마이클잭슨 노벨평화상 서명운동, 세계적 붐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09.07.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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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마이클 잭슨 생전의 모습이다. 아래는 팬들이 잭슨의 수상을 기원하며 후보로 추천하고자 하는 노벨평화상의 메달이다. ↑ 사진은 마이클 잭슨 생전의 모습이다. 아래는 팬들이 잭슨의 수상을 기원하며 후보로 추천하고자 하는 노벨평화상의 메달이다.


마이클 잭슨을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만들기 위한 해외팬들의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조용한 진실’이라는 이름의 사이트에서 시작된 이 운동에 지금껏 2200명 이상이 동참했다.

이 사이트는 2005년 잭슨 생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기 위해 ‘더 노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올라 휴네스테드(노르웨이), 리 로사(뉴질랜드), 라루카 리나체(루마니아) 등 각국의 팬들이 모여 잭슨의 업적과 선행을 기록, 알리는 일을 해왔다. 지난달 25일 잭슨 사망 이후 ‘조용한 진실’로 이름을 바꿔 활동 중이다.



팬들은 "성공의 척도는 얼마나 유명한가가 아니라 그 명성과 재산으로 무엇을 했느냐에 달렸다고 믿는다"며 "잭슨은 음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박애주의자였고 아동복지와 인권, 인종차별 방지에 쉬지 않고 힘을 보태왔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 같은 팬들의 서명 운동은 이 곳 뿐만 아니라 트위터 등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나렐리스 니콜 브라운은 잭슨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는 인터넷 서명운동을 주도해 1만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만큼 잭슨의 선행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5세에 ‘잭슨파이브’로 가수 생활의 첫 발을 뗀 잭슨은 50세까지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재단’,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재단’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 에이즈, 암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힘썼다.
↑ 사진은 마이클잭슨이 생전 1987년에 구입해 2005년까지 머물렀던 '네버랜드'의 전경이다. 이곳에서 잭슨은 몸이 아픈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알려져 있다. ↑ 사진은 마이클잭슨이 생전 1987년에 구입해 2005년까지 머물렀던 '네버랜드'의 전경이다. 이곳에서 잭슨은 몸이 아픈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잭슨은 특히 198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지역에 ‘네버랜드’를 지어 아픈 아이들이 머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했다. 1993년 2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잭슨은 “힘든 아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게 삶의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잭슨은 1998년과 2003년에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한 적은 없다. 1998년에는 전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요한 바오로 2세 등 130명의 후보와 함께 경쟁했다. 북아일랜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공로로 존 흄과 데이비드 트림블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03년의 경우 구세군, UN 등 165명과 나란히 후보에 올랐고, 이슬람권 인권 향상에 힘쓴 이란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가 수상한 바 있다.

노벨평화상 후보는 매년 10월 각국 전문가 1000여명에게 후보자를 추천받아 이듬해 2월에 접수를 시작한다. 특정 인물을 후보에 추천하고자 서명운동을 벌인 사례는 대부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또 196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다그 함마르셸드 전 유엔총장이 평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으나 1974년 이후부터는 사후 수상을 금지하는 규정이 생겼다.

때문에 잭슨 팬들의 이 같은 서명운동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를 향한 추도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난 23일 출소한 민주공화당 허경영 총재가 "마이클 잭슨이 죽기 3일전 나를 찾아왔었다. 그의 온 몸에 예수처럼 못 박힌 자국이 있었다"며 그의 순교자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말을 해 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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