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의심, 서러웠어요"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송선옥 기자 2009.07.29 10:20
글자크기

유사증상에 응급실 찾았으나 퇴짜.."의심되면 보건소 먼저 가야"

"신종플루 의심되세요? 보건소 먼저 가세요."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이은지씨는 얼마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퇴짜'를 맞았다. 3주 전 호주 출장을 다녀온 뒤 심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끝에 탈수증상까지 나타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

이씨의 증상이 고열, 기침, 인후통으로 신종플루 증상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호주 출장 뒤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며 보건소에서 먼저 신종플루 감염 여부를 확인하라고 했다.



며칠 전 내과와 이비인후과에서 신종플루가 아닐 것이라며 이미 감기약을 처방했다고 항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입국 후 신종플루 잠복기(7~9일) 기간을 훨씬 넘겼고 가족이나 주위에서 유사 증상을 보인 사람이 없다면 신종플루가 아닐 확률이 높다"면서도 "보건당국에서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보건소에서 신종플루가 아니라는 판정을 확실히 받고 오라"며 어떤 치료도 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집에 와서 해열제 몇 알을 더 먹고 버티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 앞에는 '신종플루 환자는 왼쪽 벨을 누르시오'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보건소 직원은 격리 치료를 이유로 보건소 문 밖에서 열을 재고 문진을 했다.

검체 채취는 보건소 건물 바깥의 앰블런스에서 이뤄졌다.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밀려있어 결과는 3일 뒤에나 나왔다. 다행히 정상(신종플루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그때까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감기 증상이 더 심해졌다.


이씨는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보건소를 먼저 찾아야 했나 후회가 든다"며 "그래도 응급실에서조차 신종플루 진단을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생긴 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외국에 다녀와서 열나고 아프다면 무조건 보건소에 가라는 식의 대처는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까지 신종플루 환자를 격리하는 '예방조치'를 취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확진검사를 먼저 해야 한다.

확진 검사는 보건소가 채취한 검체를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나 질병관리본부가 받아서 실시하는데 장비가 1억이 넘고 시약 값도 비싸다.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도 보건소가 아니면 구하기가 어렵다.

시중에 공급된 타미플루는 약 2만명 분으로, 웬만한 약국에서는 저장된 물량이 없어 의사 처방전을 가져와도 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검사 장비나 별도 격리시설이 없는 일선 병원은 환자가 오면 보건소로 직접 검사를 의뢰하거나, 앞서 이씨의 사례처럼 '보건소로 가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의 전병율 전염병대응 센터장은 "병원입장에서는 확진환자일 경우 중환자실 내 다른 환자들이 감염될 가능성을 우려해 보건소로 안내했을 것"이라며 "역학적 연관성(미국, 호주 등 신종플루 위험국 방문)이 있고 유사 증상이 나타난다면 보건소를 먼저 찾으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앞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돼 현재 격리 조치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일반 병원에서도 의심 환자를 감기 환자에 준해 치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일선 병원에서는 심증이 가는 환자를 그대로 돌려보내고 있어 보건소로 검사 의뢰(일일감시)를 하라는 보건당국의 당부가 큰 효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씨는 "치료받으러 갔던 대학병원에서 얼마 전 외국인 환자가 왔는데 신종플루 환자가 거의 확실해보였지만 그냥 돌려보냈다는 말을 들었다"며 "환자가 보건소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면 '격리'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