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호소하는 쌍용차 '선무방송'의 주인공

머니투데이 김보형 기자 2009.07.25 09:25
글자크기

8년차 남편 둔 가정주부‥"미술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게 꿈"

"우리는 한 가족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운명이 이렇게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언젠가 다시 함께 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본관 옆 주차장 스피커 차량에서는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노조원들에게 애절하게 파업 중단을 호소하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흘러나온다. 노조는 그녀에게 '선무 방송의 대가'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 흔한 운전학원 한 번 안다녀보고 집에만 있던 사람이에요. 선무방송 한다는 말도 노조 홈페이지에 가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24일 만난 목소리의 주인공인 A씨는 올해로 쌍용차 입사 8년차인 생산직 근로자 남편을 둔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주부다. 소박한 꿈이라면 6살짜리 아이가 다니고 싶어 하는 미술학원을 맘껏 보내주는 정도다.



"작년 12월부터 임금이 50%만 나오면서 적금도 다 깨고 이제 통장에 생활비도 거의 떨어져가네요. 지난달부터는 아이가 동네 친구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데 못 보내줘서 미안할 뿐이에요. 저희는 애들이 어려서 다행이지만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런 A씨가 방송을 하기로 한 것은 지난달 26일 정상출근을 시도했을 때 일어난 지게차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노조 측이 공장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직원들을 지게차로 덮쳐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때 남편 동료 부인들과 회사 상황이 어떤지 보려고 갔었어요. 본관 5층에서 지게차가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고 그때 방송을 결심했어요."


그녀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남편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 20일 첫 출근 날 노조의 볼트 새총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서 큰 화는 면했지만 정수리가 부은 채로 집으로 들어왔다.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출근시키고 애타는 마음으로 퇴근을 기다려요."

A씨의 남편은 쌍용차가 첫 직장이어서 그런지 유달리 애사심이 많았다고 한다. 쌍용차의 마지막 신차인 '뉴 체어맨'이 나왔을 때도 가족들을 평택공장에 데려가 '내 가 만든 차'라며 자랑스럽게 웃던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달째 파업을 하고 있는 노조에게 서운한 마음은 있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도장 공장에 있는 분들이 제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나오셨으면 해요. 모두 한 가족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귀한 아들들이잖아요."

하지만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과 일부 언론보도에는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곳에서 싸움하시던 분들은 그들만의 공간으로 이제 그만 나가셨으면 해요. 공장은 쌍용차 직원들의 땀이 깃든 곳이에요. 파업하신 분들의 힘든 점만 나오는 방송도 보기 힘들어요. 살아남았다는 저희들도 지금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쌍용차처럼 많은 고난을 겪은 자동차 회사도 없더라고요. 그런 만큼 이번 고비도 잘 넘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희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떠나신 분들과 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그 시간 "안전하게 평택공장에서 퇴근했다"는 남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A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