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로부터 정보를 얻는다는 이 로마의 여신이 "'필'이 꽂혀" 점점 많은 불길한 예언을 쏟아내자 세상이 잠시 소란스러워지며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마지막 날 노 전 대통령도 경호원에게 "(지금도)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라고 물었듯 요즘 진짜 부엉이를 보거나 그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쉽지 않다.
부엉이가 지혜의 신조(神鳥)인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미지가 좋지 않다. 어미도 잡아먹는 불효조이자 죽음의 조짐으로 알려진 이 새가 밤에 어떤 동네를 향해 울면 그 동네 한 집이 상(喪)을 당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식은땀을 흘리게 한 악몽은 대개 부엉이 우는 한밤중 상여독 고개에서 귀신에게 쫓기는 꿈이다.
다만 닥치는 대로 물어온 먹이를 바위틈에 쌓는 습성 때문에 부엉이를 축재의 심벌로 여기기도 했고, 부엉이 일종인 소쩍새 울음소리로 향후 농사의 풍흉을 판단하기도 했다. 소쩍새가 봄에 '소쩍다 소쩍다' 울면, '솥이 적다'는 소리로 풍작의 신호요, '소땅 소땅' 울면 텅빈 솥이 울리는 소리로 흉년의 암시란다. 미네르바 부엉이는 '뛰어난 지혜', 즉 예지(叡智)의 새인 반면 우리 부엉이는 '미래에 대한 예측', 즉 예지(豫知)의 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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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헤겔은 '법철학 개요'에서 "미네르바 부엉이는 땅거미가 짙게 깔려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고 했다. 판단의 근거로서의 객관적 조건들이 어느 정도 성취되기 이전의 성급한 예단에 따른 위험보다는, 차라리 "어떤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는 항상 늦는 철학"을 주장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무 일찍 나는 부엉이를 경계하는 이 주장으로부터, 좀 안다고 조급하게 경거망동하지도 말고 남을 따라 부화뇌동하지도 말며, 널뛰기로 요동치는 주식 장세에서는 팔거나 사지 말고 변동성 다소 진정되는 시점 신속하면서도 냉정하게 어떤 규칙성을 찾아 행동하라는 교훈을 발견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어느 오후 열린 교실 창문으로 갑자기 날아든 부엉이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계속 여기 저기 벽에 부딪쳐 한동안 소동이 일었던 일이 문득 생각난다. 여자애들은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인터넷 '미네르바'의 부엉이도 너무 일찍 날다 저녁 해에 눈이 부셔 방향을 잃었던 것이다. 그 '미네르바'는 한때 네티즌 팬들로부터도 버림받았다며 아예 외국으로 떠나고 싶다고까지 했다.
설익은 경제부엉이도 문제지만 너무 일찍 나는 시국(時局)부엉이도 문제다. 한동안 유행했던 시국선언들은, 현 상황을 '민주주의 위기'나 '독재'로 규정한 그 내용도 문제지만, 비상(非常)의 표현 방식으로서 너무 성급했고 흔했다.
사실 필자는 '소쩍다'의 3음절과 '소땅'의 2음절의 구별은 물론 수리부엉이 소쩍새 울음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다만 사후(事後)의 고찰(考察)을 통해 그 시국선언들을 부추겼던 부엉이는 도심 야간시위를 '직접민주주의'로 미화하고 북한 핵실험 때는 울지 않던 매우 위험한 변종임을 알 수 있다.
"풍상(風霜)이 섞어 친" 늦가을 어느 날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 부엉이가 이렇게 합창을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