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인권문제, 국내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 있어 큰 울림이었고 거울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 자신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2000년 평양을 방문, 6.15 공동선언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또 활발한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본인 자신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가 내려지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던 사형수였기에 ‘인권’의 부재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열렬한 연설로 유명한 그이지만 고문과 오랜 수감생활로 야기된 불편한 건강상태는 항상 그를 괴롭혔다.
김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도 “신장이 좋지 않아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걸 빼면 의사들이 다 좋다고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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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건강 유지법은 ‘웃음’ 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신문읽기와 맨손체조로 첫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건강을 위해서 제일 좋은 것은 유쾌하게 사는 것”이라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퇴임후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럽, 말레이시아, 중국, 미국, 일본 등에서 몰려드는 많은 강연에 응할 정도로 왕성한 혈기를 자랑했던 그는 일정이 없을 때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책이 읽고 싶어 다시 감옥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였다.
93년 한국애서가클럽에서 주는 ‘제3회 애서가상’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은 퇴임후 읽은 책 중에서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조정래의 ‘오, 하나님’ 등을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았다.
현실 정치에 있어서도 김 전 대통령의 칼날은 서슬이 퍼랬다.
김 전 대통령은 검찰이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압박할 당시 “민주주의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 아니냐. 나는 대통령이 돼서 한 사람도 정치보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여과없이 드러내 민주당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