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파란만장했던 투사의 삶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09.08.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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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18일 서거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924년 1월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목포 북교초등학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해운회사에 취직해 청년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DJ는 전쟁 후 고(故)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부패 정권과 싸울 것을 다짐하고 정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의 정치 입문은 순탄하지 않았다. 세번의 국회의원 선거 낙선 끝에 1961년 강원도 인제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3일 만에 터진 5.16쿠데타로 또다시 의정활동의 꿈을 접게 된다.

2년 후인 1963년 목포에서 당선, 어렵게 '금배지'를 달게 된 DJ는 누구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금융, 건설, 외교, 예산, 국방 등 다양한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소신 있는 정치인이자 민주화 투사로 두각을 나타냈다.

6.25전쟁 때 공산군에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긴 DJ는 정계에 입문하고도 수차례 목숨을 위협받았다.

19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2년 후인 73년에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돼 수장되기 직전 구사일생하기도 했다.


1980년에는 광주항쟁을 배후에서 주동했다는 혐의로 신군부세력의 군사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 20년형으로 두 차례 감형됐다.

석방 후에도 투옥, 망명, 연금 등 정치적 시련을 거듭한 DJ는 정계 은퇴 번복까지 감행하며 1997년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다.

당선 후 안으로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햇볕정책'을 모토로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는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 쾌거를 이룬다.

DJ는 그해 12월 이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인 2002년 속칭 '4대 게이트'('최규선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로 아들들이 구속되면서 도덕성에 흠집이 나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는 특별한 대외 활동 없이 주로 학술 활동에 힘쓰며 여생을 정리했다.


◇약력

△1924. 01.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출생

△1944.   목포상업학교 졸업

△1951. 03. 목포해운회사 사장 취임

△1961. 05.13 강원도 인제에서 5대 민의원 보궐선거 출마, 당선

△1963. 11.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선

△1967. 02. 통합야당 신민당 창당

△1971. 04. 7대 대통령 선거 낙선

△1972. 10. 유신계엄으로 일본 망명 시작

△1973. 08. 동경 납치사건 이후 극적 생환

△1980. 09.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

△1982. 12. 2년 7개월 옥고 후 형집행정지로 미국 망명

△1985. 02. 귀국 후 가택연금

△1987. 04. 김영삼 전 대통령과 신당 창당

△1987. 12. 13대 대통령 선거 낙선

△1992. 12.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

△1992. 12. 정계은퇴

△1995. 07 정계복귀 선언

△1995. 09 새정치 국민회의 창당

△1997. 12 15대 대통령 당선

△2000. 12 노벨평화상 수상

△2002. 02. 대통령 퇴임

△2009. 08.18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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