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한국의 민주화 노정과 겹쳐 있다. DJ는 민주화를 향한 역경의 노정에서 늘 중심에 서 있었고, 한국 사회발전의 큰 버팀목이었다.
그의 삶은 가시밭길로 점철돼 있지만 불굴의 의지로 한국 정치·경제사의 가장 큰 별로 자리잡았다.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화의 꿈'을 안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이주당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고난을 겪은 뒤 1963년 전남 목포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또 80년 내란음모 혐의로 계엄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석방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85년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다시 가택연금됐지만 불굴의 의 민주화 투쟁을 이어갔고 92년까지 6년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로 했지만 95년 복귀한 뒤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DJ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사회적 권력을 뜻하는 '무엇'에 집착하지 않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냐는 '방법론'에 천착했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고난 속에서도 민주화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끝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업적을 쌓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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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치열한 정치투쟁 못지 않게 정치·경제 이론가로서도 명성을 높였다. '독재와 나의 투쟁', '김대중 옥중서신'에 이어 85년에 '대중 경제론'을 출간하는 등 끊임없이 자신의 정치·경제철학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95년 출간된 '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은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97년 달라진 여건을 반영해 '대중참여경제론'을 새롭게 내놨다.
그의 서거로 한국은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를 잃었다. '그 어떤 정치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했던' 그의 인생은 전세계 주목을 받으며 글로벌 정치·경제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이 핵심국으로 발돋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서거에 따라 그의 인생과 철학, 그리고 족적에 대한 관심이 안타까움과 더불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