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조합과의 전쟁, 서울시 이길까?

머니투데이 원정호 기자 2009.07.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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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공공관리제 도입, 재개발비리에 칼빼든 서울시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제도개선 업무를 하는 서울시 정비계획팀. 이달 들어 하루 100여건이 넘는 민원인 방문과 전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발표한 '공공관리자 도입방안'이 발단이다. 이 제도가 언제 시행되는지, 자신들의 구역도 해당되는지가 최근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것.



최성태 정비계획팀장은 "주민들이 적잖이 격려해주는 통에 공무원 생활 25년 통틀어 가장 바쁘면서도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조합과의 전쟁, 서울시 이길까?


서울시가 지난 40년간 민간에 맡겼던 재개발·재건축 제도에 공공관리 개념을 도입하면서 부동산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건설회사나 조합의 반발에 전쟁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며 강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공공관리자 제도란 구청장이 정비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주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설계업체·시공사를 선정하되 구청장 또는 구청장을 대행하는 공공관리자가 선정과정을 관리 감독하는 것이다. 공공관리 대행은 주택공사나 SH공사 신탁회사 한국감정원이 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조합과 정비·철거·설계·시공업체간 비리를 없애 사업비용의 거품을 빼고 기간을 단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아파트 분양원가(조합원 분담금)가 1억원 이상 낮아지고, 사업 기간은 2년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본다.

서울시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조합원 660명에 1230가구 규모의 A단지는 사업비가 19% 절감돼 99㎡ 아파트 분담금이 1억원 이상 낮아진다. 조합원 1250명에 1600가구 규모의 B단지는 가구당 7000만원 절약된다.


김효수 시 주택국장은 "조경과 마감, 인테리어 특화 공사로 지출되던 예비비와 세부 내역 없이 책정되던 공사비가 크게 줄어든다"면서 "건설사 등에서 차입하던 대여금을 공공기금 융자로 바꾸면 이자 부담도 경감된다"고 말했다.

◆성수 시범구역, 구청장이 정비업체 선정

서울시는 이 같은 장점을 앞세워 공공관리제도를 몰아붙이고 있다. 서울시가 제도를 시범 적용할 시범구역으로 성동구 성수동 72 일대 '성수전략정비구역(65만9190㎡)을 선정하자 성동구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성수구역 지구단위계획(정비예정구역 지정)안'을 8일 공고했다.

공고안에 따르면 공공관리자인 성동구가 정비업체를 공개 입찰로 선정하고 추진위 구성 및 승인 절차를 관리하게 된다. 성동구청장은 추진위원장 후보 등록을 일괄적으로 받아 공고를 거쳐 주민 투표방식으로 위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과반수 주민의 동의서를 먼저 받은 이가 위원장을 하는 방식이어서 동의서 징수 일을 대행하는 정비업체 등과 결탁해 동의서를 매매하거나 위원장 경합에서 탈락한 쪽에서 방해를 놓는 등 갈등과 비리가 만연했다. 추진위 구성 이후 공공관리자를 지속할지는 추진위가 선택하게 된다.

시는 성수구역을 시작으로 484개 재개발·재건축구역 중 추진위가 구성됐거나 구성을 준비 중인 329곳에 공공관리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나머지 조합설립 인가 이후 구역은 사업이 상당히 진척된 만큼 주민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시는 우선 현재도 시·도지사가 정비사업 감독이 가능한 근거를 들어 공공관리자 제도를 시범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제도 정착을 위해선 정부 차원의 법제화 작업이 필수적이어서 국토해양부를 설득, 하반기 중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조합 비리사슬 끊어 분양원가 낮춘다

서울시가 정비사업의 공공주도 전환에 발벗고 나설 수 있던 것은 그동안의 민간 주도 사업에 문제점이 크다는 주민들의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우선 조합이 사업 관련업체를 선정하고 계약하는 게 투명하지 않다. 건설사는 공사비 산출내역서 없이 3.3㎡당 단가로 어림잡아 건설 계약을 따낸다. 건설사가 사실상 초기부터 개입해 재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탓이다.

건설사는 게다가 본계약 체결 때 공사비를 올려 받는다. 서울시 분석 자료에 따르면 공사비는 추진위원회와의 가계약 때 평당 평균 274만원이지만 본계약 체결 때는 356만원으로 상승했다. 30%가량 오른 것이어서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조합은 또 사업승인 전까지 50~60개 업체에 용역을 주면서 선정 이유 공개를 거부하거나 제한된 정보를 주민에게 제공한다. 성북구 K재개발구역조합의 경우 지반조사, 3D시뮬레이션, 경관분석, 문화재 지표조사는 물론 경호 업무 등으로 52개 업체와 계약했다.

이처럼 투명하지 않은 업무 추진으로 조합임원 비리와 관련자간 분쟁이 꾸준히 늘고 있다.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비사업 관련 비리 9900건 중 절반(5000건)이 조합비리였다. 지난해 비대위나 세입자 등 관련자간 소송도 2004년에 비해 11배 증가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공은 민간 재산이란 이유로 관리감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조합 비리와 분쟁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오히려 관련자와 결탁해 부정행위에 개입하기도 했다. 1993~2008년 재개발 재건축 비리 중 23%는 공무원과 연루됐다.

◆제도 정착까지는 진통 예상

공공관리자 제도가 도입되면 일대 변화가 예상되지만 정착까지는 먼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건설업계가 ▲과도한 관 개입으로 민간 손실 초래 ▲자금 흐름예측과 브랜드에 맞는 설계가 어려운 점 ▲사업 지연 우려 등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시공사 입찰 시기를 조합설립 인가 이후에서 사업시행 인가 이후로 늦추면 사업 지연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게 건설사 주장이다. 설계를 먼저 하고 시공사를 나중에 뽑으면 시공사가 브랜드 특성에 맞게 설계를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주택협회의 관계자는 "현행법에 의해서도 비리를 막을 수 있는데 여기에 공공기관이 또 개입하는 것은 옥상옥의 조치"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법령 개정 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다.

주민갈등 심화와 사업차질 등 부작용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일부 조합설립이 완료된 곳은 조합원 사이에 사업을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심지어 시공사 선정을 마친 지역에서도 다시 시공사를 선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추진위가 선정된 일부 지역에선 서울시 발표 이후 추진위 주도권을 빼앗긴 측이 추진위 선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사업 차질을 빚고 있다.

국토부가 지자체의 재정지원 능력 차이에 따른 형평성 시비 등을 우려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도입하는데 난색을 표명하는 점도 건너야 할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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