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몇 명이 더 죽어야 할까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9.07.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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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폭염으로 무려 1만500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6000만명 중 0.025%가 폭염을 직접 영향으로 해서 죽었다.

이 해 유럽에서 열파(Heat Wave)로 사망한 이들의 수는 약 5만2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2003년 유럽의 평균여름 기온은 평년대비 3.6도 높았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심장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던 이들이나 노약자, 소외계층 주민이었다. 가난할수록 폭염 등 이상기후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폭염으로 인해 사망자 수가 급증한 사례가 있다.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에 따르면 지난 1994년 7~8월 평균기온은 28.1도로 1993년(24.3도) 1995년(25.3도)에 비해 3~3.5도 더 높았다.



1994년 한 해만 해도 15~65세 인구집단의 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18.1% 증가한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사망자 수는 75.3% 늘었다. 특히 심장병, 당뇨병, 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는 이들은 전년 대비 30~46% 더 많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4~2003년 기간 동안 서울·인천·대구·광주 등 4개 도시에서 폭염을 직접 원인으로 사망한 이들은 2127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폭염이 아니었으면 죽지 않았을 이들의 수가 이 정도다.

한국 등 세계 각국이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폭염에 대한 대응체계 구축은 즉각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 시카고의 경우가 좋은 예다.


1995년 7월 33.9~40도에 이르는 폭염 때문에 700명이 사망한 이 도시는 폭염경보 발령하거나 공공보건시스템 확충하는 등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1999년 더 심한 폭염이 시카고를 엄습했지만 폭염 사망자 수는 144명, 4년 전의 5분의 1에 그쳤다.

프랑스 역시 2003년의 경험을 통해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방재·보건당국을 아우르는 종합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폭염이 시작되기 전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무더위 대처요령을 숙지토록 하는 것은 물론, 폭염이 본격화되면 백색경보(Plan Blanc)를 울려, 모든 국·공·사립 병원이 응급환자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참고로 백색경보는 전쟁이나 지진, 대규모 폭발, 원자로 누출 등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는 사태 때 발령된다고 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사례는,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상황 발생시 적절한 경보를 발령할 뿐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보건당국과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한 게 특징이다.

이에 비해 올해 소방방재청이 내놓은 '2009 폭염대비 종합대책'은 재난 경보 발령 및 무더위 휴식시간제 도입 등 내용만 들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학계 관계자는 "정부 당국이 폭염이 재난상황이란 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이 때문에 국민 건강이 대규모로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간과하는 듯하다"며 "한국도 보건복지가족부가 폭염대책 주무당국으로서 제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규모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는 프랑스가 여름에 각급 병원을 바짝 긴장시키는 걸 난리법석을 피운다고 봐야할지, 그렇지 않은 우리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봐야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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