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미봉책' 아닌 '근원처방' 필요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9.07.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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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노조 양보와 기업 처우개선 노력 결합돼야

 비정규직법이 시행 만 2년이 되는 지난달까지 개정되지 못해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봉책이 아닌 근원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초 정부가 주장한 것처럼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려도 2년 후에는 똑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 노·노간 대결단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실 지금의 비정규직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법 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노·사·정은 사용기간을 놓고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정부와 재계는 4년안을 주장하다 3년안을 마지노선으로 삼았고 노동계는 1년안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절충안으로 2년안이 국회에서 채택됐다. 노동계는 사용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재계는 사용기간이 너무 짧다고 불평했다. 정부는 법 시행 2년이 되는 시점에 비정규직의 집단해고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래도 2년이면 숙련성을 갖추기 때문에 기업에서 해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느긋하게 대응했다.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시정제도가 정착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과도한 격차가 줄어들어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차별시정 신청권을 `힘 없는돴 개인에게만 부여해 제도의 실효성을 스스로 좁혔다.

 제도 시행 당시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던 차별시정 신청은 올해 5월 기준으로 2142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시정명령이 나온 사례는 99건밖에 안된다. 결과적으로 기대한 비정규직 처우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대신 숱한 비정규직만 실직의 '백척간두'에 놓이게 됐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해고법'이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23만2000원으로 정규직 평균임금 216만7000원의 56.8%에 불과하다. 비정규직법의 원래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차별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을 둘러싼 근본적인 시각과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비정규직 보호는 '공염불'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없던 비정규직이 10년여 만에 537만4000명(정부 기준)으로 폭증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은 위기시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노동유연성 확대를 추구하게 됐다.



 이 결과 기업들은 전문적인 업무능력이 필요한 분야 외의 업무는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으로 지속적으로 대체해왔다. 이 결과 단순·반복노동은 거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됐다.

 이 때문에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지 않으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3년으로 늘리든, 4년으로 늘리든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해고가 쉽지 않은 정규직으로 전환은 기업으로선 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재빨리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성노조'의 울타리 안에서 과보호받는 정규직의 경직성도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데 주요 배경이 됐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무리하게 옥쇄파업을 하는 쌍용차 사태가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쉽게)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난해 기준 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1.6%인 데 비해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2.8%에 불과하다. 300명 이상 대기업의 노조조직률은 45.4%다. 현재 비정규직법 개정을 적극 반대하는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대변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등 4대 사회보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측면도 강하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4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앞으로도 비정규직 채용은 '대세'로 자리잡을 공산이 크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과도하고 부당한 차별을 줄이고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 정규직 노조의 전폭적인 양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규직이 임금과 복지 측면에서 비정규직에게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고 기업들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나서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거리'는 좁혀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차별시정제도를 개선해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못하게 하는 사회적 문화가 형성돼야 소모적인 비정규직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시장연구본부장은 "비정규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차별시정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사용기간 제한은 대기업은 당분간 유지하는 대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은 사용기간 제한을 푸는 게 올바른 해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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