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서민을 위한 법률가

김진한 변호사 2009.06.29 08:32
글자크기
서민정치 또는 서민경제를 비롯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서민의 주체성이 강조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민이 가리키는 대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서민이란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처럼 서민은 그 범위를 명확하게 확정하기 어려워 얼핏 추상적인 말로 들리지만 사실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고 엄청난 힘을 갖기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서민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서민만을 위한, 서민층에 의한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왜곡된 정치체제라고 규정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시민 전체를 의미하는 인민(Demos) 스스로의 지배, 인민의 권력을 실현하는 체제로서가 아니라 서민들이 집단 이익을 다수 지배의 방식으로 실현하는 체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한 서민의 개념과는 달리, 현대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며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 이들, 경제위기가 닥칠 때 그 한파를 가장 혹독히 체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서민이다. 최근 경기침체, 실업률 증가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서민을 위한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서민이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포함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 모두의 입맛에 맞출 수 있는 정책을 실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칫 서민을 위한 정책은 실질이 없이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는 공중누각이 되기 쉽다. 또한 어느 집단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따라서 사회 통합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서민은 국가와 사회를 비롯하여 모든 집단을 존재하게 하는 실제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서민은 추상적인 집단이 아니라 실존적이고 개별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현실의 주체이다.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이 하반기 경제운용의 주요 정책 목표라고 한다. 서민이 체감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실제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지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각 분야에서 골고루 표명되고 또 실천되어야 한다. 이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판단하는 각 기관들에 대하여도 예외가 아니다.

세종대왕이 존경받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서민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서민들이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세종대왕은 당시 농경 국가였던 조선의 서민들이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천문 기상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여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또한 어려운 한문을 익히지 못하여 무지의 악순환에서 불편함을 겪는 서민들이 쉽게 글을 배우게 하고자 한글을 창안했다.


현재의 정책 입안자 및 기업가 또는 법률가가 세종대왕처럼 획기적인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민이 지금의 사회를 있게 하는 실제적인 원동력이자 뿌리가 됨을 인식하고 이러한 마인드로 각 역할에 임한다면 분명히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특히 법률가는 스스로가 무엇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지, 법률 및 법률정책에 관하여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법률 또는 정책인지 끊임없이 되새기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흔히 사회의 취약계층이라고 불리는 여성, 청년, 고령자, 저소득층 등을 위하여 더욱 실제적인 정책이 계획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열정과 관심만 있다면 말이다.

단지 정책입안자이기 때문에 또는 법률가라는 이유로 서민을 위한 정책에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서민이 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이므로 서민을 위한 정책은 곧 사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민을 위한 정책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서민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서민을 위한 정책 또는 서민정책을 위한 역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고 특히 나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걸음 더 생각하는 것이다. 법률가라면 더욱 이러한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법이란 본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