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제거=존엄사 공식 깨졌다(종합)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9.06.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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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연명치료 중단 시행

세브란스병원은 23일 오전 10시 22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를 집행했다.

연명치료중단은 10시부터 시작된 임종예배 후 주치의인 박무석 호흡기내과 교수가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해 온 김모(77)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인위적으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인공호흡기 제거 후 1시간 이내에 임종을 맞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김 할머니가 호흡기 제거 후에도 자발적으로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인공호흡기 제거 등 연명치료 중단이 임종, 즉 존엄사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의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을 존엄사 인정으로 받아들였던 만큼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인공호흡기 제거 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당초 30~40분이면 임종할 것으로 예상했던 환자의 상태가 3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악화되지 않고 있다"며 "호흡기 제거 전과 비교해 모든 생체신호가 거의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폐렴, 욕창 등도 없으며, 피검사에 대한 염증 소견도 없다. 대법원이 판결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만을 명시한 만큼 수액 등을 통한 영양공급은 지속되고 있다. 지금상황만 놓고 보면 외부에서 영양공급을 해줄 경우 인공호흡기 없이 식물인간 상태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병원 측의 입장이다.

따라서 병원 측은 대법원이 김 할머니를 '사망임박단계'로 보고 판결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있다. 박 의료원장은 "사망임박 단계는 뇌사나 장기손상 등이 진행된 상태를 의미하지만 김 할머니의 경우 콩팥 등 장기에는 이상이 없고 뇌손상만 있었던 상태"라며 "지금상황만 놓고 보면 외부에서 영양공급을 해줄 경우 인공호흡기 없이도 식물인간 상태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환자 상태가 이대로 지속될 경우 병원과 가족은 김 할머니를 퇴원시킬지, 지금처럼 계속해서 병원에 둘지 등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며 보다 명확한 의학적인 존엄사 판단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자의 연명치료중단 의사 뿐 아니라 사망단계 진입 여부를 보다 면밀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존엄사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연명치료중지관련지침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첫 회의를 열고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임원, 의대 교수 등 의료계 관계자로 구성된 10명의 위원을 선정했다.



좌훈정 의협 대변인은 "내부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 8월 공청회를 거친 뒤 9월 존엄사 관련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번 사례를 모델로 병원 모두가 통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명치료 중단은 지난 달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김 할머니 자녀들이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며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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