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기, 절묘한 줄타기 국면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2009.06.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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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현재 국내외 경기의 진로에 대해 대체적으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진단은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무너진 금융시장에도 응급조치가 취해지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돈의 물꼬를 열면서 숨넘어갈 듯한 비상 국면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판단인 것이지요.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겼지만 또 다른 큰 고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 외국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미 고위관리와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의 글을 소개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18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1937년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인데요. 크리스티나 로머 미 백악관 경제수석이 기고했습니다. 로머 수석은 이 기고문에서 1930년 대 대공황 당시 미 정부와 의회가 경솔하게 긴축정책으로 선회한 결과 미국 경제가 다시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해 다양한 경기부양 조치를 취한 데 힘입어 1937년에는 성장률이 9%로 급상승하고 실업률도 25%에서 14%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37년과 38년에 걸쳐 실업률은 다시 19%로 치솟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엇보다 미 의회가 경기 회생을 과신한 나머지 재정확대 정책을 백지화하고 사회보장세를 거둬들여 GDP의 2.5% 만큼 재정적자를 일시에 줄여버리는 과격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물가불안을 우려한 FRB가 은행들이 고객의 인출요구에 대비해 보유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의 비율을 일시에 두 배로 올리는 급격한 통화긴축조치를 취합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대출회수에 들어가 시중자금사정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결국 너무 급작스럽게 재정과 통화의 돈줄을 죈 게 불황을 재발시키는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로머 수석은 이번에도 동일한 실수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민간수요가 정부가 푼 돈을 대체할 정도로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경기부양조치는 유지돼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17일 파이낸셜 타임즈지의 고정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자신의 칼럼에서 로머 수석과 동일한 맥락의 주장을 폅니다. 현재 세계경기가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한 수축국면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긴축은 다시 경기를 냉각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울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위험을 지적합니다. 그렇다고 풀린 돈이 너무 늦게 환수되면 달러가치와 미 재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미 장기 국채수익률도 상승해 세계경제는 물가급등 속의 경기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세계경기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블랜챠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미국 소비자들이 덜 쓰면서 저축을 늘리고 미국은 수출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소비자들이 더 많은 수입품을 사주고 이들 경제는 수출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래서 세계경제가 제대로 된 회복국면에 본격 진입할 때까지 정책의 묘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한쪽으로는 불황재발, 다른 쪽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면서 경기를 소생시켜 나가야 하는 절묘한 줄타기 정책을 각국 정부가 펼쳐 나가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한국 경제, 남들보다 덜 어려운 편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는 점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사가 준 교훈을 직시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머리를 맞대고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출구전략을 잘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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