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정권교체'!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9.06.2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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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5만원 경제학/ ②1만원 푼돈되다

편집자주 6월23일, 우리나라에서 36년 만에 최고 액면 화폐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 화폐 개혁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고액권'의 탄생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1년 안에 10만원권 수표의 90% 이상, 1만원권 수요의 40% 가까이를 대체하리라는 예측만큼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위력도 감지되고 있다. '5만원권' 시대. 최고 액면 화폐의 새 정권 맞이로 분주한 경제ㆍ사회ㆍ문화 각 분야별 동향을 살펴본다.

2007년 1월19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앞에는 노숙인(?)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임에도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족하고 친척들 동원해서 총 12명이 왔습니다."
"며칠 노숙하는 것쯤이야 견뎌야죠."
특이한 것은 이들 노숙인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라는 것. 바로 24년 만에 새롭게 발행될 예정이었던 1만원권과 1000원권을 사기 위해 사흘 밤낮을 세며 '개고생'을 자처한 이들이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2009년 6월. '새로운 돈' 냄새가 또 다시 세상을 들썩이게 한다. 아니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5만원권'이라는 고액권의 탄생. 1973년부터 무려 36년간이나 최고액권(?)으로 군림해온 1만원권을 '무릎 꿇게' 한 5만원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돈의 '정권교체'!


◆5만원 신권 손쉽게 구하려면?



신권을 빨리 보고 싶다고?'

앞뒤 안보고 한국은행으로 달려가는 것은 절대 금물. 이번엔 개고생이 아닌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 빠른번호(AA*******A) 중 1~100번은 표본 은행권으로 채취해 한은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하고, 101~2만번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경매를 실시한다.


2만1번부터 100만번까지는 시중은행, 산업ㆍ수출입은행을 제외한 특수은행, 지방은행 본점 및 우정사업본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발행된다. 따라서 한국은행으로 가지 말고 주변 시중은행이나 우정사업본부 등으로 가야 한다.

은행들은 5만원권 유통에 따라 현금입출금기(ATM) 교체 및 업그레이드에 한창 분주하다. 5만원권은 1만원권과 세로 길이는 같으나 가로는 6㎜ 크다. 따라서
현재 운영 중인 ATM을 신형으로 교체하거나 기존 기기를 유지하더라도 5만원권을 인식하는 '감별부'를 새로 교체해야 한다.

그렇다면 5만원권을 인식하는 신형 ATM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은행은 어디일까?
물론 은행 직원을 통해 5만원권 교환을 요청할 수 있지만 ATM 거래를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각 은행의 ATM 교체 스케줄을 살펴보자.

시중은행들은 올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점포당 1대 이상 신형 ATM기 교체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시중은행 중 ATM기 교체 행보가 빠른 곳은 외환은행 (0원 %). 6월 초부터 '새 5만원권 맞이' 교체 작업에 들어가 이미 6월 18일 전 영업점당 5만원권종을 인식하는 ATM기를 1대 이상 배치 완료했다.

하나은행은 6월23일까지 580대의 감별부로 교체하고 신규로 51대를 들여온다. 나머지 11대도 7월8일까지는 설치를 마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7월 말까지 점포당 최소 1대씩 5만원권 거래 ATM을 배치할 예정이다.

기업은행 (14,020원 ▲310 +2.26%)은 6월부터 9월까지 지점당 1대 이상 약 630여대(신규 400대 + 감별부 교체 230여대)의 ATM을 교체할 방침이다.

반면 국내 최대 영업망을 갖춘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ATM 교체에 다소 신중한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일단 수요가 많은 점포 250곳에 신형ATM을 배치할 계획이며, 신한은행은 6월23일부터 약 일주일간 주요 점포에서 5만원권 거래 ATM 50대를 시범 운용한 뒤 순차적으로 교체해나갈 예정이다.

◆10만원권 수표, 1만원권 위상 변화
돈의 '정권교체'!
새 5만원권의 등장으로 그간 고액권의 역할을 해온 10만원권 자기앞수표와 최고 액면 화폐였던 1만원권의 명암도 엇갈리게 됐다.

10만원권 수표에겐 그야말로 치명타. 5만원권에 고액권 지폐 역할을 내주고 '역사 속으로' 퇴출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승윤 한국은행 발권국 부국장은 "지금까지 10만원권 수표는 고액권 지폐가 없어 부득이하게 현금 대신 사용됐다"며 "금년 내에 10만원권 수표는 거의 모두 5만원권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도 대체로 이러한 10만원권 수표와 5만원 고액권의 신구 교체를 환영하는 분위기. 은행권에 따르면 그간 10만원권의 발행에서 전산처리 및 보관 등에 드는 비용이 연간 2800억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유통으로 얻는 수익은 미미했다는 토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0만원권 수표의 경우 시중에 풀렸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채 하루ㆍ이틀이 안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만일 이틀 동안 10만원권 수표의 유통으로 2% 정도의 수익을 남긴다고 가정하면 약 20원의 이자가 붙는 셈"이라며 "반면 은행에서 직원들이 일일이 수표를 발행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고작 20원만 들겠냐"면서 5만원권의 등장을 반겼다.

1만원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승윤 부국장은 "현재 시중에 풀려있는 약 30조원의 돈 중에 약 26조6000억원(금액으로는 약 90%)이 1만원권"이라며 기존 '1만원권 득세'의 기형적 구조를 꼬집었다. 이 부국장은 "외국에선 고액권의 비중이 전체 돈의 약 50%를 차지하는 경향에 비춰볼 때, 5만원권의 발행으로 1년 안에 1만원권의 상당 부분이 5만원권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통 규모뿐 아니라 위상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 1만원권 지폐가 발행된 첫 1973년 이후 소비자 물가는 13배 이상 뛰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00배 이상 늘었다. 현재 1만원권 화폐의 가치는 당시에 비춰보면 700원대에 불과한 셈.

그럼에도 36년 내내 같은 최고 액면 화폐의 지위를 누렸던 1만원권은 5만원권의 등장으로 인해 '거스름돈(?)'으로 급격한 위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윤의필 골든브릿지금융판매 PB팀장은 "5만원권의 등장으로 고액에 대한 심리가 상대적으로 무뎌질 수 있다"면서 "자연스럽게 물건의 값이 뛸 것에 대비해 지갑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이 '5만원권 시대' 재테크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5만원권 신권으로 재테크?
'큰 손'을 모시는 PB센터에서도 새 5만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6월18일 서울 강남의 한 시중은행 PB는 "지점에 약 1억원 정도의 5만원권을 배정받을 예정인데 일부러 신권을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자산가들이 있고, 먼저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서비스 차원에서 먼저 신권 필요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고 5만원권 신권 발행을 앞두고 분주한 상황을 전했다.

PB센터가 아니라도 한동안 은행 창구에서 가장 대접받는 돈은 새 5만원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처음 등장하는 5만원 고액권인데다 신권이라는 가치가 더해져 시중에서 '모시기'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과연 5만원권 신권은 수집 가치로는 얼마만한 가치를 지닐까? 특히 '몸값'이 높은 돈은?

화폐전문 유통회사인 화동양행의 최은정 팀장은 "수집 화폐의 가치는 ①희소성 ②인기도 ③보관상태 등의 3대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5만원권 신권이 언제 얼마까지 올라갈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아주 빠른 번호나 연속번호 등은 수집가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경매를 통해 5만원권 신권의 앞 번호를 따내지 않더라도, 운 좋으면 좋은 연속번호로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예컨대 '1234567'과 같은 오름차순, 반대로 '7654321' 등의 내림차순 아니면 '77777' '888888'의 반복번호와 '737373'처럼 규칙성을 지닌 반복번호 등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돈으로 꼽힌다.

꼭 이러한 고유번호가 아니라도 수집 화폐에는 시간의 가치가 더해지는 법. 최 팀장은 "1만원권이 첫 발행되던 1973년에 나온 신권의 경우 수집가들 사이에 현재 약 20만원 내외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돈의 '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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