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양 업계가 의견을 달리하는 사안이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사장단이 나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감독당국에 건의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앞으로 양 업계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실이 일제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같은 날 오후 3시 이번엔 생보사 사장단이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생보사 사장단은 민영의료보험 본인부담제도가 지연될 경우 도덕적 해이 증가 등으로 인해 선량한 보험가입자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조속한 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금융위에 건의키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8월부터 생보사에도 실손보험 판매가 허용됐지만 오랜기간 정액보험만 판매해온 생보사들은 쉽게 실손보험을 출시하지 못했다. 보험 원리상 관련통계자료가 축적이 돼야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고 상품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보사들은 5년여가 흐른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손형보험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보사들은 실제의료비의 80%만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았다. 실제의료비를 100% 보장해주는 손보사 상품과 차별화를 강조했지만 쉽지 않은 승부였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때를 같이 해 지난 2006년 보건복지부가 실손 민영의료보험의 보장제한을 검토했다가 흐지부지된 사안이 새정권 들어서면서 다시 검토되기 시작했다. 민영의료보험 가입자가 과잉진료를 받으면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생보업계로서는 정부의 정책을 반길 수밖에 없었고 손보업계에게는 날벼락이었던 셈이다. 이때부터 양 업계간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시작됐다. 무엇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생보사가 주력으로 판매해왔던 변액보험 시장이 무너진 대신 손보사의 실손보험이 강세를 보인 점도 갈등을 부추겼다.
◇누구를 위한 보장제한인가= 이처럼 양 업계 사장단이 서로 상반된 의견을 금융위에 건의하기로 함에 따라 공은 이제 금융위로 넘어갔다. 금융위는 그동안 실손보험의 보장제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었으나 최근 들어 긍정적인 쪽으로 선회했다.
손보사 사장단이 먼저 움직인 것도 금융위의 태도 변화가 감지된 탓이다. 그대로 뒀다간 실손보험 보장제한이 축소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움직인 셈.
따라서 금융위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도 난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건보재정 악화의 주범인 민영의료보험의 보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보장제한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데 있다. 과잉진료를 받는 민영의료보험 가입자 때문에 선의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 정부당국의 생각이지만 일방적으로 민영의료보험의 보장제한을 받아들여야 하는 선의의 소비자들은 정작 고려대상이 안된다는 사실이다.
정부당국의 움직임이 이렇다 보니 정작 보험영업현장에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일부 독립법인대리점(GA)들은 조만간 100% 보장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며 지금 100% 보장상품을 가입하라고 소비자들을 부추기고 있다. 자칫 영업질서가 문란해질 우려마저 나온다.
최근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다는 장모씨(31)는 "조금 있으면 실제 의료비가 100만원이 나와도 내가 그중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해서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다"며 "국민들한테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그러는 법이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실제 보험혜택을 보는 소비자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실제 보험을 가입하고 헤택을 받는 소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은 불씨만 안길 뿐이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종사자들은 양 업계간 대치상황이 길어져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지금 똘똘 뭉쳐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기도 벅찬 마당에 에너지 낭비"라며 "벌써 몇년 째 질질 끌고 있는데 어떤 쪽으로든 정부당국이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