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왼쪽 팔걸이에 장착된 단추를 누르자 낮은 모터소리와 함께 몸이 서서히 눕혀진다. 등과 엉덩이에 맞닿은 면들이 각자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다. 몸이 완전히 한 일(一)자로 뻗었지만 180cm의 키에도 여유 공간이 넉넉하다.
가까운 쪽 단추를 누르자 머리를 지지하던 받침이 서서히 각도를 세운다. 모니터를 응시하기 좋은 각도가 만들어지자 마치 내 방 침대 위에서 영화감상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늘 위 휴식처 ‘코스모 스위트’
코스모 스위트의 특징은 넓은 여유 공간이다. 좌석의 길이가 2m10cm이고 좌석 폭은 67cm다. 당초 1열에 6개의 일등석이 있었지만 코스모 스위트는 1열에 4석에 불과하다. 그만큼 개인공간이 넓어졌다는 의미다.
주문형오디오비디오(AVOD) 화면도 기존 일등석 대비 42cm 늘어난 58.4cm(23인치)다. 하늘 위에서 홈씨어터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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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좌석도 업그레이드
좌석의 길이가 188cm이고 좌석 폭은 51cm다. 폭은 기존과 다르지 않지만 길이에서 무려 61~66cm 늘어났다. 모니터도 기존의 16.5cm(6.5인치)에서 39.1cm(15.4인치)로 대폭 커졌다.
일반석에 해당하는 뉴 이코노미도 등받이를 뒤로 기울일 경우 방석 시트가 앞으로 이동하도록 설계돼 불편함을 줄였다. 또 기존에 없거나 작았던 AVOD를 26.9cm(10.6인치)로 통일했다.
◆쾌적성 ‘최고’, 가격은 ‘헉!’
B777-300ER 항공기 좌석의 쾌적성은 크기가 같은 기존 항공기 B777-300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존 항공기의 전체 좌석이 376석인데 반해 새 항공기는 291석이다. 일반석이 336석에서 227석으로 109석이 줄어든 반면 프레스티지석이 28석에서 56석으로 2배가량 늘었다. 일등석은 12석에서 코스모 스위트로 바뀌면서 8명의 VVIP만 모시도록 했다.
세계 최고급 항공사인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이나 싱가포르항공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탑승, 식사, 수면 등 시간에 맞게 변하는 22가지 조명이나 카메라를 통해 비행기 전ㆍ하방을 볼 수 있는 모니터 화면 등은 타 항공기가 갖지 못한 특별한 서비스다.
한편 좌석 부족으로 생기는 매출감소는 연료 절감과 차등 요금 적용을 통해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조원태 여객사업본부장은 “좌석 교체 효과로 항공기 무게가 크게 감소해 연료 절감에 따른 잉여가 지속적으로 누적될 것이다. 운임 부분에서는 일반석은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코스모 스위트와 프레스티지 슬리퍼의 가격을 10% 정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적용하면 체류기간 1년 인천-뉴욕 노선의 코스모 스위트 왕복요금은 1110만원, 프레스티지 슬리퍼는 755만원, 뉴 이코노미는 339만원 안팎이다.
◆핵심 프로젝트 진두지휘한 조원태 상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상무가 대한항공 입사 후 대표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6월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 상무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응대했다. 2007년 9월 A380 시범비행 행사 때 얼굴을 비춘 일이 있지만 그 당시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조 상무의 직함은 여객사업본부장. 여객사업본부는 대한항공의 전체 매출 가운데 60%인 6조원가량을 책임지는 핵심본부다. 조 상무는 2년6개월 정도 자재부 구매담당 역할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 10개월 만에 대한항공의 핵심프로젝트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번 항공기 좌석 교체사업은 대한항공이 2005년 좌석 교체 이후 고객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3년간 공들인 작품이다. 좌석 하나당 교체 비용만 2500만원에서 최고 2억5000만원이 드는 대공사다. 명품 항공사를 지향하는 대한항공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젝트다.
그룹 내 주요기업의 핵심프로젝트를 조 상무가 주도하게 됨에 따라 그룹 안팎에서는 조 상무의 후계구도가 본격화 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대적인 기업 브랜드 가치 향상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40년 대한항공의 미래가 장남에게 쏠렸다는 해석이다.
일단 대한항공 측도 이번 프로젝트를 조 상무가 주도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그룹 회장의 아들이 직접 기자간담회에 참여해 질의응답에 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사업에 조 상무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상무 자신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공로를 아버지에게 돌렸다. 조 상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회장께서 계획하고 주도하신 일”이라며 “나는 그저 임직원을 리드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