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주도? 재개발·재건축 추진위 '혼란'

머니투데이 원정호 기자, 전예진 기자 2009.06.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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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서울시가 정비사업의 공공 역할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자 재건축·재개발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다. 당장 8월부터 구청이 연번(일련번호)을 매긴 동의서만 법적으로 인정되면서 조합추진위원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공공역할 확대에 대해 주민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과 조합 자율성을 떨어뜨려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란 의견이 맞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공공 개입 확대를 위해 정비사업 절차에 일대 수술이 예고되자 일부 정비구역에선 예비추진위들이 활동을 올스톱하기도 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8월부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려면 관할 구청이 발행해 연번이 찍힌 동의서에 주민들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정비사업이 관 주도 아래 들어가는 셈이다.



한 추진위 관계자는 "새 법이 시행되면 기존 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할지 몰라 일손을 놓았다"면서 "동의서 새로 받으면 오히려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불편함을 호소하기는 추진위 업무를 지원하는 정비업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동의를 받을 때마다 관의 동의를 거쳐야 해 혼란이 가중되고 새로운 분쟁 소지가 된다는 것이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동의서가 훼손되거나 수정할 일이 생겼을 때 관에 방문해 사유서 쓰고 다시 받아야하지 않느냐"며 "이 경우 사업진도가 크게 늦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비해 주민들은 대체로 공공 개입이란 새로운 시도에 기대감을 걸고 있다. 한남뉴타운 동빙고구역(한남5구역) 주민인 양모씨(45)는 재개발사업이 투명해질 것이라며 반겼다.

이 일대는 최근 뉴타운 기본계획 고시에 맞춰 추진위가 추가로 늘어나면서 혼탁 양상을 빚고 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2개 추진위가 2005년 통합한 뒤 최근 또 하나의 추진위가 활동하면서 상호간 흑색선전에다 주민 줄세우기가 성행하고 있다.



양씨는 "재개발이 시작도 안된 상황에서 추진위간 경쟁이 과열되면 결국 그 운영비용은 주민이 부담해야 한다"며 "관 주도를 100% 신뢰하진 않지만 이권을 우선시하는 민간보단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 호계주공의 박연옥 추진위원장도 "예비 추진위간 상호 흠집내기가 도를 넘어 소송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경쟁 과열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동의서 서식을 법정화해 추진위를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형건설사들도 취지에 공감하고 나섰다. SK건설 관계자는 "한몫을 기대한 사람들이 정비업체를 뒤에 끼고 다수의 추진위에 관여하는 행태가 존재한다"며 "추진위간 동의서 사고파는 행위가 사라지면 시공사와 정비업체간 비리를 없애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기대 효과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무법인 을지의 차흥권 변호사는 "각 정비구역이나 조합 실정에 맞게 융통성과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관이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면 되지 사업절차를 엄격히 통제하고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그 보단 건설사나 정비업체가 법을 어기며 추진위와 결탁하는 사례를 적발해 처벌을 강화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 개입에 대한 후폭풍이 예상외로 거세자 국토해양부와 서울시의 입장에도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국토부는 "아직 법 시행전이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서울시는 이 제도 시행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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