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이름모를 '잡초', 알면 돈되는 '약초'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9.06.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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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11-1>한국식물분류학회 야외관찰회 동행취재

편집자주 이해관계가 달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다. 각자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 없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준다. 다른 나라의 경제위기와 환경파괴는 우리나라의 시장 축소와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로운 해결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2009년 쿨머니 연중 캠페인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 하우(How)'를 통해 지구촌 당면 과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현장을 방문해 그 노하우를 전한다.

↑ 지난달 31일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원들이 내장산국립공원에서 희귀식물종을 살펴보고 있다. ↑ 지난달 31일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원들이 내장산국립공원에서 희귀식물종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식물분류학회 소속 교수와 대학원생 90여명이 전남북을 가르는 내장산 국립공원의 한 봉우리인 입암산을 누비고 다녔다.

학회원들은 전날부터 열린 2009년 춘계 워크숍과 야외관찰회를 겸해 이 곳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환경기자클럽 소속 기자들을 데리고 산 구석구석의 식물들을 소개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나도밤나무'예요. '나도 밤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이 나무의 이름은 '이나무'예요. 제주도에 가면 '먼나무'라고도 있어요. 제주도에 가면 '저 나무가 뭔 나무냐' '뭔 나무긴 먼나무지'라고 한다는 그 '먼나무'요."



김철환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는 이렇듯 친절하고 재미있게 식물의 이름 하나하나를 설명해줬다. 그저 흙, 나무, 풀, 꽃만 보이던 기자들에게도 자기만의 이름을 가진 생명이 하나씩 다가왔다.

한 때 가수 나훈아가 '이름 모를 잡초야'를 애절하게 불렀지만 이들 학회원들은 '이름 모를 잡초'란 없다고 단언한다. 단지 '우리가 무지해서 모를 뿐'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968년 설립된 한국식물분류학회는 국내 주요 대학의 생물학과, 생명과학과,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를 비롯해 박사·석사 과정을 이수했거나 이수 중인 대학원생, 식물관련 기관 관계자들의 모임이다.


◇"이름을 알아야 자원으로 활용하죠"=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박사는 아예 묵직한 카메라 받침대까지 챙겨서 나왔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깊은 숲 속, 섬세한 풀꽃 하나하나를 흔들림없이 찍기 위해서라고 한다.

카메라 세트를 짊어진 김 박사와 김철환 교수는 풀과 나무마다 이름을 확인하며 걸어갔다.



↑ 김철환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가 자신이 발견해 명명한 '큰설설고사리'를 보고 있다.↑ 김철환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가 자신이 발견해 명명한 '큰설설고사리'를 보고 있다.
"이게 여기에 있었네, 교수님 여기 좀 와보세요."

100여미터 앞에 미리 걸어가던 한 학회원이 '큰설설고사리' 무리를 발견하고 김철환 교수를 불렀다. '페곱테리스 코리아나'라는 이름의 학명을 가지고 있는 큰설설고사리는 지난 2003년 김 교수가 처음으로 발견해 명명한 고사리의 일종이다.



우리 산에 있는 식물이지만 이를 발견한 것은 불과 6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생물자원, 특히 식물에 대한 기초 조사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김찬수 박사는 "식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식물의 유전정보를 확인해 약용 등 여러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라며 "연구대상 식물이 뭔지 알아야 종자 개량 같은 후속 작업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류는 수천년 전부터 곡식을 재배하고 약용식물을 채취해 활용하며 식물자원에 의존해왔다. 식물에서 채취한 성분을 잘 활용하면 고부가가치를 낳는 산업도 가능하다.



천연물 의약품에 대한 연구개발은 신약 1건을 개발할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1조~2조원의 매출과 매출의 20~50%에 달하는 순이익이 창출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아스피린은 지난 100년간 사용돼 왔고 은행잎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혈액순환제는 연간 2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식물자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갈조류·홍조류 등 해양조류에서부터 선태류(이끼류) 포자식물 종자식물 등에 이르기까지 식물들을 종·속·과·목·강·문 등의 분류로 나누는 식물분류학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이유다.



하지만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식물 기초학문은 뒤처져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만 1억2400만점의 동·식물표본과 유전자 정보가 수집돼 있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에도 6700만점의 동·식물표본과 화석, DNA 정보가 있다. 프랑스도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7600만점의 생물자원 표본이 소장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립종자관리소, 국립수목원, 한국야생식물종자은행 등 국책연구소 △서울대·고려대·강원대·부산대 등 주요 대학에 설치된 국가지정 연구소재 은행(생물자원 연구용 샘플 저장소) △서울·경기·전남·전북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축산연구소 등이 보유한 생명자원 표본을 통틀어야 81만점 정도에 불과하다.



모르면 이름모를 '잡초', 알면 돈되는 '약초'
◇"생명다양성 지키려는 노력 필요한 시점"= 그나마 국내에도 식물자원을 활용한 바이오산업의 성공사례는 있다. 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동아제약 (123,800원 ▼1,800 -1.43%)은 애엽에서 추출한 위염치료제 '스티렌'을 통해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SK케미칼 (34,750원 ▼400 -1.14%)은 위령선, 하고초, 괄루근 등 식물에서 추출한 골관절염 치료제를 연간 120억원씩 팔고 있다.

지난해 국립생물자원관 건립을 계기로 생물자원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생물자원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제약업체 등 기업의 연구후원은 거의 없는 상태다. 김찬수 박사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안 보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식물자원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병화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식물자원이 우리 생활에 어떤 유용함이 있는지 규명된 것은 극히 적다"며 "그런데도 지금 당장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제초제로 식물을 죽여버리거나 생태학적으로 소중한 곳을 개발해 식물생태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상당수의 식물들은 개개의 특성을 지닌 소중한 자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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