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외환보유액' 놓고 설왕설래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09.06.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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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말 외환보유액이 2267억7000만 달러로 증가하면서 적정 외환보유액을 놓고 논의가 분분하다.

2년전인 2007년 4-5월 당시의 논란이 ‘외환보유액이 과다한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를 어떻게 더 쌓아야 하는지’로 논의의 구도가 달라졌다.

적정 외환보유액 논란은 지난달 28일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장이 한 세미나에서 “경상수입액과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액 등을 감안해 볼 때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 정도 돼야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김 원장은 “향후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돼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환율이 하락하고 있을 때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 역시 적정 보유액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확충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엇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소규모 개방경제인데다 안보가 불안한 상황이므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외환보유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외환위기를 반복해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게 필요하며 한편으로 급증했던 단기외채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적정 외환보유액을 언급하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 외채 규모로 볼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기준인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비율 60%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3000억 달러 안팎의 외화유동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데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말 외환보유액 보다 700억-800억 달러 가량을 더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그러나 현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이 같은 논의가 인위적인 시장개입 요구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의 외채 규모가 빌미가 돼 여러 위기설에 시달렸다”며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시장개입을 통해서 확충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할 경우 통화량이 확대돼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수 있어 부정적이다. 이는 일부 자산시장의 과잉유동성 문제로 번질 수 있고 나아가 환율조작국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매달 외환보유액에서 운용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은 특별한 변수가 없어도 증가한다"며 “유로화 등 이종통화의 환율 상승분과 외화자금 회수분 등을 감안할 때 개입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2년전 보고서를 통해 외환보유액 과다 논쟁을 촉발시켰던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적정 외환보유액은 외채규모와 구조, 대외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적정 금액이 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단기외채가 늘었고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선 적정 외환보유액을 논의하기 보다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 금융협력을 강화하는 등 큰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2년전 외환보유액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당시 원화가 절상되고 있었고 단기외채가 많지 않아 상황이 다르다"며 "외환보유액 확충을 위해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의 수급이 반영되도록 외환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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