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체어' 모텔에 임대해서 대박치자?

머니위크 이재경 기자 2009.06.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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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사기경보/ ②다단계ㆍ유사수신 사기

편집자주 세상이 변한 만큼 '사기'도 변했다. 수법은 상상력이 부족할 정도로 교묘해졌다. 공간은 자유자재로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든다. 이렇게 살벌ㆍ씁쓸한 시대에는 사기 당하지는 않는 것도 재테크다. 정신 바짝 차려야 자기 돈과 신용을 지킬 수 있다. 날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발전하는 사기의 세계와 그 대응 요령을 공개한다.

모텔에 가면 볼 수 있는 성 보조기구, 일명 '러브체어'. 한대당 제품구입비 등 330만원씩을 투자한 다음 이를 러브호텔에 임대해 회사와 투자자가 똑같이 수익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전국에 산재한 모텔에 뿌리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혹한다면?

황당한 제안같이 들리지만 지난 2005년 이 수법에 속은 사람만 5만여명이었다. 피해금액은 3000억원에 이르렀다.



신종 상품권도 등장한다. 지난 2007년 한 방문판매업체는 회원이 32만명에 달하자 상품권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100만원을 투자하면 일단 액면가 130만원짜리상품권을 지급했다.

아직 가맹점이 없으므로 전국적으로 가맹점을 구축하기까지 3개월 동안은 보관만 하는 조건이었다. 대신 3개월 후에는 상품권을 사용해도 좋고, 액면가 그대로 현금을 다시 받아가도 좋다는 조건도 붙였다. 3개월 후 30%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것.



엄청난 수익률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렇게 모인 자금은 1조원대를 기록했다.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으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보장했던 이 업체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업체들의 수법은 대부분 '돌려막기'다.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주는 수익은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의 투자자금에서 나간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채운다. 그러다가 한번 터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러브체어' 모텔에 임대해서 대박치자?


김현수 방배경찰서 수사관은 "은행 금리 이상을 보장한다며 투자를 권유하는 곳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며 "유사수신 등 불법적 투자유치를 하는 곳이 무려 3000곳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은 또 "경제난 속에서 ‘한몫’ 잡으려는 사람을 노린 유사수신행위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면서 "저금리시대를 맞아 피해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김현수 수사관은 지난 2002년 이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팀 등에서 유사수신 등 금융경제범죄 수사를 전담해온 경찰 최고의 전문가다. 2005년부터는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금융경제범죄수사 및 공공지능범죄수사과정 등을 통해 일선 경찰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해양경찰학교에서도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순환마케팅? 포인트마케팅? 결국 '돌려막기'

유사수신업체나 불법 다단계, 피라미드업체들은 자신을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순환마케팅' '공유마케팅' '포인트마케팅' 등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한다. 그래도 뜻은 하나다. '돌려막기'.

보통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고 재투자를 유도한다. 가령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수익이 붙어 120만원이 됐으니 고스란히 다시 투자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다가 투자자들의 70~80% 정도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이 되면 결국 무너진다.

김현수 수사관은 "관악서에서부터 방배서, 강남서, 수서서 등의 경우 취급사건의 50% 이상이 유사수신이나 불법 다단계라고 할 정도로 일반인들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포장에 능한 만큼 수법도 날로 고도화하고 있다. 투자 아이템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 방문판매업체는 전자화폐 선불카드를 내놓았다. 신용카드와 달리 충전해서 쓰는 선불카드 형태다.

보통 신용카드는 가맹점에게서 3% 정도의 수수료를 받지만 이 카드는 가맹점 수수료가 무려 10%였다. 이 중 5%는 카드 사용자에게, 나머지 5%는 회사와 투자자가 똑같이 나눠 갖는 형태다.

상식적으로 이런 고율의 수수료를 내며 가맹점이 될 업소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업체는 업체 사무실 근처의 식당을 본보기로 제시했다. 당시 이 업체는 반포 일대 3개 빌딩에서 3000여명의 영업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주변 식당은 20%의 수수료를 내더라도 이 업체와 계약을 맺을 만 했던 것. 또 이 업체 가입 회원만 10만명이었다.

이 선불카드를 통해 이 업체는 1200억원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가맹점은 확장할 수 없었고 결국 67명이 입건되고 3명이 구속되는 대형사건으로 비화했다.

김현수 수사관은 "일단 방판업체나 다단계업체가 회원 수가 늘어나면 사업설명회를 통해 사람들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으므로 유사수신 등 불법업체로 변질되기도 한다. 심지어 대체연료사업, 납골당, 수목장, 바이오연료사업 등으로 유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 투자금은? 상법상 익명조합이라 못줘!

법인형태도 날로 다양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고금리를 약속한 단순 유사수신이나 방문판매, 다단계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유사수신행위의 위험성이 많이 알려지자 2005년부터는 투자자문회사, 투자일임회사, 창업투자회사, 개인투자조합, 상법상 익명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업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상법상 익명조합은 민법상 조합(협동조합 등)과 달리 영업자는 출자금을 받아 영업자의 자산으로 귀속시킬 수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상법상 익명조합으로 설립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금 자체가 영업자의 재산이 되므로 배임이나 횡령이 성립하지 않는다. 또 조합원은 출자금이 손실 감소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

김현수 수사관은 "최근 상법상 익명조합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피해가 늘어나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밖에 투자일임회사와 투자자문회사는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 하고 창업투자회사와 개인투자조합(엔젤클럽)은 중소기업청에 등록해야 한다.

김 수사관은 "이런 형태의 업체들은 해당 요건을 갖춰 관에 등록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원금 이상의 수익을 약정해 투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유사수신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투자자문회사 등은 투자금 자체를 받을 수 없다"고 조언했다.

◆'무늬만 방판(신방판)' 경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무늬만 방판(신방판)'에 대해 이례적으로 '합법'임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방문판매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단계식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A화장품, L생활건강, H화장품, K화장품, N화장품 등 국내 대형 화장품회사에 대해 방문판매업으로 신고해놓고 실제로는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고 있다며 영업행태를 바꾸거나 아예 다단계 영업자로 등록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김현수 수사관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다단계판매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판매업자가 공급하는 재화 등을 구매한 소비자의 전부 또는 일부가 판매원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게 법률 문구 그대로 해석한 것 같다"며 "이 판례에 따르면 소비자가 구매에 앞서 판매원으로 등록하기만 하면 법망을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수사관은 이어 "국내의 수많은 불법 다단계업체들이 모두 이 수법을 이용하지 않겠냐"면서 "앞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편 공정위에서는 지난해 11월 '소비자에게 판매할 것'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아직까지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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