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1기의 충고 "대형화의 함정 경계"

더벨 문병선 기자 2009.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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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법무 파워엘리트]⑫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 변호사

이 기사는 05월19일(13:5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대형화·전문화를 말하는 변호사가 많다. 전문화를 하다보니 사람이 필요하고 각 분야의 서비스를 하다보면 대형화가 뒤따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수익을 많이 내는 로펌이 가장 큰 로펌이 아니다. 로펌의 대형화·전문화는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구비 요건일 뿐이다."





이정훈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 변호사(62)가 국내 각 로펌의 대형화 전략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터뷰 도중 한 말이다. 90년대 후반 국내 로펌의 규모가 작았을 때야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 유효했으나 너도나도 대형화를 한 나머지 최근에는 철학없는 대형화가 난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말이다.



2000년 이후 국내 로펌간 대형화를 위한 합병은 대체로 12건이다. 이 가운데 5건이 지난해 집중됐다. 팽창 일변도의 전략을 모든 로펌이 구사하게 될 경우 출혈경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전부 대형화를 하면 어디에서 경쟁력이 나오는가? 외국 로펌과 경쟁할 때 반드시 대형 로펌만 이기는가? 대형로펌인 태평양도 20년 후 위치를 장담하지는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대표는 사법연수원 1기 출신이다. 국내 로펌에 1기 변호사는 많지 않다. 대체로 10기를 전후해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고 주요 팀장은 20기가 주를 이룬다. 이 대표의 지적은 그래서 더욱 귀담아 들을 만한 경륜이 배어 있다.

◇미국도 합병 실패 사례가 많아


그의 방향은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고 어떻게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로펌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타 로펌과 합병에 대해서는 "지금 합병 논의를 진행하는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 로펌도 합병을 많이 하는데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합병하면 어느 한쪽만 남고 한쪽은 없어진 경우도 많다. 로펌의 기업문화는 특성이 강해 시너지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그렇다고 합병에 대해 벽을 차단해 두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국의 경우 동부 로펌과 서부 로펌이 합병하는 효과가 크다. 동시에 미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에 강한 로펌과 해외에 강한 로펌이 만나면 합병의 효과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로펌이 별로 없다.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미국보다 약하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역사에는 우리나라 로펌의 형태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80년 법률사무소 형태로 설립됐고 1987년 법무법인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20년이 지난 2007년에는 유한책임 로펌으로 전환했다.



◇태평양, 설립 이후 적자 한번도 없어

이 대표는 "지금처럼 커진 로펌 조직에 예전 5명의 변호사가 일을 보던 때의 규정을 적용하면 안되지 않겠느냐. 회계법인처럼 법무법인도 문닫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의 상황에 맞게 변호사의 책임을 감해주는 데 유한책임 로펌의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연한 조직이지만 어느 로펌보다도 소속 변호사간 유대 관계가 끈끈하다게 이 변호사의 자평이다. 대형화되면서 자칫 퇴색할 수 있는 가족적 분위기를 통해 이직률도 적다. 그는 설립 때부터 태평양을 이끌었다.



이 대표는 "설립 이래 한번도 적자를 내 본적이 없다. 외환위기 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심지어 지난해와 올해도 성장하고 있다. 초심을 유지하며 후배들에게 투자한 것이 전통이 되어 경쟁력으로 연결된 듯 하다"고 말했다.

태평양의 영문명인 'Bae, Kim & Lee'에서 마지막 이니셜인 'Lee'가 바로 이 대표다. 197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으나 70년대 후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 태평양을 창업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런 강단이 있기 때문인지 최근의 대외 개방과 외국 로펌의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니 국내 금융기관의 서비스가 훨씬 좋아지지 않았느냐. 경쟁에서 도태되는 로펌도 생기겠지만 살아남으면 더욱 강해진다. 전체적인 로펌의 시장이나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법조계 전체가 시장 개방에 대해 너무 겁을 내지 말았으면 한다. 이것도 경쟁이기 때문에 본질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쟁의 실체를 빨리 파악하고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경쟁의 실체는 지금하고 있는 경쟁이다. 지금 잘하고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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