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공기업 방만경영의 본질

문형구 고려대 경영대 교수 2009.05.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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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공기업 방만경영의 본질


최근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다시 한번 '신이 어쩌구' 하는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급기야는 이명박 대통령이 70여 개 공공기관 대표를 모아 놓고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강력한 개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여러 겹의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경영이 잘못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기업에 대한 감시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감사원 감사 결과 언론으로부터 큰 질타를 받은 기업 중에는 작년 경영평가에서 3위를 차지한 곳도 있다. 경영평가와 감사원 감사 그리고 감독기관에 등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고 이 글에서는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논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들을 위한 변명: 학습된 무력감



감사원 감사가 발표되고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모두가 질타를 보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아무도 시도하려하고 있지 않지만 한 번 공기업의 입장에서 그들을 변명해 보자. 그들을 위한 변명으로서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들고 싶다. 학습된 무력감은 지속적인 실패를 경험하였거나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경험한 경우 겪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언제나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대선 승리의 전리품으로서 승리의 공이 큰 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CEO의 경우 아무리 성과가 높아도, 임기가 아무리 많이 남아 있어도 정권이 바뀌면 경질되기 일쑤였다. 또한 서정쇄신이나 일벌백계의 시범대상이 되는 단골손님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무력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정부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면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저 시키는 대로 하지 뭐'라는 반응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공기업을 향해 인원을 줄이라고 하고 있는데 '인원감축의 방안을 마련하여 보고하면 되고, 그 시행은 점차적으로 하는 것으로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옛날로 돌아가면 되고' 등과 같은 대응이 없으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인원의 감축을 왜 하여야 하는지 혹은 원래 배정된 인원보다 감축할 경우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무조건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미래비전에 맞는 방안보다는 일괄적인 지시에 맹목적으로 체념하면서 순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매년 받는 경영평가와 감사원 감사 그리고 국회 업무보고 등 온통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어 실질적인 변화보다는 서류상의 미사여구에 만족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문제: 과도한 주인의식



두 번째 지적할 수 있는 점은 과도한 주인의식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공기관의 CEO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고 하였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외부에서 영입되거나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온 CEO들을 제외하면 공기업 구성원들이 너무나 높은 주인의식이 오히려 문제라 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조직을 위해서 헌신하여 왔는데 감히', '과연 누가 우리보다 우리 조직을 더 잘 알고 있는가', '외부 사람들이나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온 CEO들이 무얼 알고 있다고 하는가. 우리 조직의 역사성을 모르면 말을 하지 말아', '우리는 우리 식으로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등과 같은 강한 어조의 자신감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강한 주인의식에 기반을 둔 닫힌 마음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문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일반 기업에도 도움이 될 교훈



첫째, 구성원의 무력감을 떨쳐 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항상 겹겹이 쌓여 있는 감시망 속에 있다는 모멸감, 소신껏 해 보고 싶지만 불이익만 안 당하면 다행이라는 피해의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큰 틀만 제시되고 나머지 세세한 부분은 스스로 아무런 제약 없이 소신껏 시행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진정한 의미의 주인의식을 함양하여야 할 것이다. 오래 근무하였다고 주인은 아니다. 진정한 주인라면 지금 근무하고 있는 우리가 당장 얻을 수 있는 단기적 혜택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소속된 조직의 장기적 존속가능성,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후배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공기업 논란에서 우리가 얻을 가장 중요한 교훈은 본질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공기업이 왜 존재하여야 하는가. 단순히 조직경영의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공기업이 왜 민간기업이 아닌 공기업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감독기관의 일률적인 가이드라인과 개별 조직의 유니크함 사이의 긴장관계 등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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