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경제가 좀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자 의욕도 많이 감퇴했다. 우선 몰아붙여야 하는 은행의 칼끝이 무뎌졌다. '압박'보단 '대화'다.
반면 기업의 버티는 힘은 더 커졌다. 이렇다보니 사라졌던 '자율'이란 말이 재등장했다. 은행과 기업이 '자율적' 협약으로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는 것.
실제 당국의 메시지는 강했다. 출발 지점은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밀착 점검' '엄중 책임' 등 수위도 강했다.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구조조정에) 협조하지 않은 그룹에 은행이 신용공여를 하겠나" "구조조정이 잘 안 되면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이 잘 되겠나"라며 압박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대우그룹도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그룹이 해체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두 건지려고 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아까운 기업부터 먼저 팔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그래도 큰 상황 변화는 없었다. 보름이 넘게 '힘겨루기'만 계속됐다. 약속했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시한(5월말)은 다가오는데 최종 대상도 확정짓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18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이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할 적기"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갈 길이 아직도 남아있고 냉정하고 신중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 "지난 외환위기 대 서둘러 긴장을 풀어 위기를 통해 반드시 해야 할 구조조정과 각종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등 걱정과 아쉬움도 담았다.
메시지 대상은 기업과 은행 모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당국과 채권단에 힘이 되는 얘기"라며 "머뭇거리던 은행이나 기업도 생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채권단은 재무구조 평가 결과 '불합격'한 그룹 14곳 중 업종별 특수성 등을 고려, 약정 체결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던 일부 그룹과도 '자율 협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합격한 그룹 중 일부도 '자율 협약'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주채권은행과 부채권은행 모두 동의해야 하지만 자율 협약은 주채권은행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주채권은행이 부채권은행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 자율협약 형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