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기업, 구조조정 놓고 샅바싸움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반준환 기자, 임동욱 기자 2009.05.17 17:40
글자크기

그룹 11곳과 재무구조개선 약정..2곳 제외 가능성

은행과 기업이 구조조정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은행들은 기업들에 계열사 매각뿐 아니라 유휴자산 처분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기업들이 "경기가 살아나는 분위기여서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도록 기다려달라"고 버티는 탓이다. 재무구조약정 체결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해외수주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은 탓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이번주까지 45개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 가운데 재무구조 개선약정 대상을 확정할 계획이다.

기업 및 금융당국과 협의에 따라 2곳 정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최소 9곳에서 최대 11곳이 약정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다음달 초까지 기업의 구체적인 자구계획 및 재무구조 개선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약정은 이달 말까지 체결될 예정이었으나 은행과 기업들의 막판조율이 난항을 겪으며 일정이 다소 지연됐다는 전언이다. A그룹은 알짜계열사 중 하나를 파는 방안을 협의해왔으나 해당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자 다른 계열사를 매각 대상으로 은행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유동성 압박을 받는 B·C그룹 등은 재무구조 개선약정과 관련해 자산매각에는 동의했으나 계열사 매각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두 그룹은 부채비율이 그리 높지 않고 계열사를 매각하면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자칫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그룹은 핵심계열사 매각에는 동의했으나 추가 개선방안을 요구하는 은행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매각 후 유입될 현금흐름에 대한 시각이 은행과 다르다는 것이다. D그룹은 계열사 매각으로 부채비율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은행은 시장상황이 좋지 못해 매각이 무산되거나 매각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무역수지 및 주가 등 각종 지표가 개선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도 크게 변했다"며 "지난 연말까지는 기업들이 자금지원을 조건으로 자산매각을 논의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올들어 증시가 상승하고 기업들의 자회사 지분평가액이 다시 늘어나면서 이런 문제가 커졌다"며 "매각할 자회사의 주가가 회복되고 있으니 매각시기를 좀더 늦춰달라는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나 기업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최근 M&A시장에서 기업 매물이 상당수 거론되자 인수후보들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무리한 계열사 매각이 기업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걱정하는 대목이다. 가치가 떨어지는 계열사는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결국 '돈이 되는 계열사'를 팔아야 하는데, 이는 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딜레마다.

한 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물건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 결국 헐값에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의 주장"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외환위기 때처럼 해외자본에 득이 되는 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설업의 경우 미분양 부동산을 할인해 판매하는 등의 자구계획이 가능하나 일반 제조업체는 쉽지 않다"며 "특히 핵심역량에만 주력해온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유휴자산이나 불필요한 계열사가 적어 구조조정이 더욱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