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방향 맞지만 문제는 속도다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09.05.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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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비 부진, 경기회복 속도에 비해 과속한 증시 일깨워

미국 소비가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미국 소매판매가 예상 외로 두 달 연속 감소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 증시가 동반 추락했다. 미국과 유럽이 하락한 것은 당연했고 코스피지수와 일본 니케이지수도 2%대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전날 발표된 미국 소매판매 결과는 세계 경제의 현실을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증시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각국의 정책 지원으로 인해 경기 하강세가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관건인 민간의 소비나 투자의 회복은 아직 힘들다는 한계를 보여줬다. 미국의 실업률은 계속 상승 중이고 미국인들은 여전히 소비 보다는 저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아시아가 미국인들의 빚에 의존한 과잉소비를 충족시키며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 소비가 회복되지 못하면 아시아 각국의 경제회복 속도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올라 온 증시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기회복 속도에 맞춰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기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방향성은 맞지만 문제는 경기회복 속도와 주가 상승 속도의 차이"이며 "미국 소매판매 결과는 이 속도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특히 미국 소매판매의 부진은 구조조정 이슈를 부각시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과잉소비에 맞춰 과잉생산을 해 왔던 아시아 각국은 미국 소비가 회복되지 않으면 생산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지난 4개월간 유동성에 의존하며 구조조정 없이 지나갈 수 있을지를 기다렸지만 미국 소비가 계속 부진한 이상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중국에서 4월 대출이 많이 줄고 한국에서 대기업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수급도 불안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를 1400포인트까지 끌어 올렸던 외국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증시에 별다른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수급이 꼬이면 증시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은 13일에 이어 14일에도 순매도를 기록했다. 매도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서 이틀 연속 순매도한 것은 지난달 7~8일에 이어 한달만이다.


외국인들은 특히 지수선물을 1만2610계약 순매도했다. 지난해 7월11일 이후 최대 규모다. 그동안 매수했던 계약에 대한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와 신규 매도 물량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당분간 증시가 더 오르기는 힘들다(차익실현) 또는 증시가 하락할 것(신규 매도)이라는데 베팅했다는 얘기다.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세중 팀장은 "외국인들은 코스피지수의 PBR(주가순자산배율) 1.3배에 달하면 공격성이 사라지는 패턴을 보였다며 지수가 1500선에 근접하면 PBR(주가수익배율) 이 수준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 증시의 강세가 이어진다면 외국인들의 강한 매수를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증자에 나서고 있어 이들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다만 속도조절로 인한 조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두려워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소매판매의 부진은 총체적인 거시경제 리스크의 재부상이라기 보다는 거시경제 개선 속도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거시경제의 개선 방향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당분간 조정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컸던 상황인 만큼 이 참에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오히려 이번 조정이 없었을 경우 조정의 형태가 조금 더 과격해질 수 있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세중 팀장도 조정이 오더라도 전 저점까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파산해 금융시스템이 파국을 맞을 우려가 반영됐던 지수가 1000선이었고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이같은 시스템 리스크는 크게 줄어든 만큼 조정시 저점은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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