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물린 상처, 장기투자로 치유될까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09.05.2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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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수능세대의 ‘재테크 블루스'-10

'장기투자'. 수능세대들에게 낯익은 말이지만 그다지 좋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는 아니다.

직장을 잡고 '투자'라는 걸 시작해볼 무렵. 부동산 신화에 동참하지 못했던 많은 수능세대들이 장기투자의 매력을 믿고 주식형펀드에 희망을 담았다. 그러나 결과는 상투. 부동산 상투를 피하려다 펀드에서 덜미를 잡혔다. 아직 버티고 있는 펀드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는 실망이자 희망으로 남아있다.

장기투자는 역사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투자방식임에 분명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장기투자의 성패는 투자자 개인이 어떤 시점에 투자를 했고,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참고 인내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수익률이 낮은 시대를 맞이할 것

인덱스펀드의 창시자이자 세계 4대 투자거장으로 꼽히는 인 존 보글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앞으로 우리는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낮은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07년 발간한 책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에서 "인덱스펀드 장기투자는 분명 가장 좋은 투자방식이지만 수능세대들이 향후 10년간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불행하게도 부모형제들이 누렸던 수익률보다 낮다"고 지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100년간 주식시장의 총 수익률은 9.6%다. 이중 이익성장이 5.0%, 배당수익률이 4.5%였고, 주가수익비율 변화, 즉 투기수익은 0.1%를 차지했다.

기간을 최근 25년간으로 좁혀 보면 수익률은 12.5%로 높아진다. 이익성장이 6.4%, 배당수익률이 3.4%이고, 투기수익도 2.7%나 된다.


그러나 보글은 2017년까지 향후 10년간의 합리적인 총 수익률을 7%로 낮춰 추정했다. 이익성장은 6%가 발생하겠지만 배당수익률은 2%로 낮아지고, 투기수익은 마이너스 1%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10년간의 이익성장과 배당수익률을 합친 투자수익률 추정치 8%도 과거 100년간 9.5%, 과거 25년간 9.8%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는 특히 수능세대가 주로 투자하고 있는 일반 주식형펀드에 대해서는 '잔인한 산수'를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각종 수수료와 비용, 세금으로 인해 인덱스펀드가 아닌 일반펀드 투자자들은 연 1.2%의 실질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 그는 "펀드산업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극적 일반펀드 투자자는 대단히 불행한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투자 vs 마켓타이밍 투자

국내에서도 맹목적인 장기투자에 대해 경계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장기투자의 표본으로 꼽히는 미국 주식시장조차 과거 1967년부터 1982년까지 고통의 시간이 계속됐다. 같은 기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68%에 머물렀고, 박스권 장세가 반복되면서 연평균 주가상승률은 2.54%에 불과했다. 당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연평균 7%였던 점을 감안하면, 물가상승률도 반영하지 못하는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된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월 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상당기간 추세가 아닌 변동성을 사고 팔아야 하는 시장 흐름이 고착화될 것"이라며 "긴 시간을 감내할 수 있는 장기 투자자가 아니라면 기대수익률을 낮춘 '마켓타이밍' 전술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무턱대고 장기투자하지 말고 타이밍에 맞춰 치고 빠지라는 의미다.

실제 일본과 대만, 한국의 코스닥은 '장기투자'의 허무함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본 니케이225지수의 수준은 1989년 12월 역사적 고점의 20% 수준이다. 대만 역시 1990년대 초의 고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 역시 2000년 3월 기록한 역사적 고점(2834.40)에서 거리가 한참 멀다. 극심한 버블의 정점에서 주식을 사면 장기투자를 해도 효과를 볼 수 없다. 한 투자자의 라이프사이클을 넘는 '장기간'의 투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활력 없지만, '버블'은 덜 심각

전 세계 증시가 2007년의 고점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단기간 내 예전의 활력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달러 유동성과 부채 위에서 달려온 미국경제는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세계경제의 '엔진'으로 불리던 중국의 성장속도도 주춤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한국과 전 세계 주식시장이 거의 동시에 맞은 2007년 10월의 고점은 예전의 '버블'에 비해 과열의 정도가 매우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증시의 주가수익배율(PER)은 48배에 달했고, 1990년대 초 대만은 160배나 됐다. 2000년 초 나스닥도 54배였다. 당시 코스닥은 총 기업실적 합계가 적자여서 PER 자체가 계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2007년 당시 한국 증시의 PER은 13.4배 정도이고, 2009년 상반기에도 12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적이 개선되면 주식시장은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역사적으로 세계경제가 총체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후퇴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거둔 해는 7차례에 불과했다.

◆그래도 장기투자, 이머징마켓이 열쇠

장기투자의 선교자 제레미 시겔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주식투자 바이블', '투자의 미래'란 책으로 잘 알려진 그는 2007년 10월 역사적 고점을 찍던 무렵 방한해 "한국 등 이머징마켓 증시의 PER은 20 미만이면 합리적이다. 일본·중국 등 일부 시장을 제외하고 버블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체면을 구겼지만 "장기적으로 주식은 가장 수익률이 높고 안정적인 자산"이라는 그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더 길게 보면 그의 주장은 또 들어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가 2007년 당시 합리적이라고 말했던 한국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겔 교수는 특히 한국, 중국 등 이머징마켓의 성장이 선진국의 고령화와 경제침체를 상쇄하면서 주식시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2007년 말 주가 꼭대기에서 큰 돈을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긴 얘기가 되겠지만, 적립식펀드로 꾸준히 투자해온 수능세대들에게 장기투자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점점 커지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장기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반복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2009년 상반기. 펀드 장기투자 구호에 상처받은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개미군단'을 형성하며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펀드를 환매해 직접 투자에 나서는 것보다 눈 감고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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