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은 ‘신세계’가 아닌데...

홍기삼 MTN 산업부장직대 2009.05.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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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시평]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때 회사근처 골목어귀에 조그마한 슈퍼마켓이 있었다.

요즘 동네마다 번창하고 있는 대형의 슈퍼마켓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크기가 아주 작아서 말 그대로 ‘구멍 가게’였다.

전날 밤 센 술자리가 있었으면, 어김없이 이 집 아주머니가 해 주는 라면 국물로 속을 자주 달랬다. 그래서 아침이면 자연스레 이 슈퍼마켓은 회사 동료들의 사랑방이 되곤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아마 이 아주머니가 해장술을 한 잔씩 내주기도 했던 것 같다. 몇 년 째 같은 회사 직원들이 손님으로 들락날락 거리다보니, 이 집 주인 아주머니는 직장 초년병들의 ‘아픔’까지도 자연스레 헤아렸다.

나름 이니셜로 ‘암호처리’된 직장 상사의 이름으로 흉을 볼라치면, ‘아, 그 분이 좀 그렇지’라며 대번에 알아차리기도 했다.



10년도 훨씬 넘어 우연히 옛 직장 옆을 지나가다가 문득 그 ‘사랑방 슈퍼’가 생각나서 발길을 돌렸지만, 그 슈퍼마켓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재개발로 올라선 번듯한 빌딩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때의 낯선 느낌이 아직 선하다.

최근 아파트 밀집지대에 위치한 슈퍼마켓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예전 같은 살가운 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서민생활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특히 아직 슈퍼마켓 주인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들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최근 슈퍼마켓업자들 사이에서는 근심거리가 늘었다고 한다. 국내 대형마트 1위 업계인 신세계 이마트가 슈퍼마켓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 이문동에서는 최근 오픈한 ‘미니 이마트’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이 계속 늘고 있다. 험악한 집단행동이 일어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신세계 측은 “갈수록 대형마트 부지를 구하기 어려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올 초 이마트 이경상 대표이사는 신년 시무식 자리에서 슈퍼마켓 사업을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표명했다.

올해 최소 30개 이상의 슈퍼마켓형 마트를 오픈하겠다는 대외비 목표까지 이미 세워놓고 수석부장을 TF팀장으로 내세워 주도면밀한 계획아래 슈퍼마켓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물론 롯데와 GS리테일,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등의 유통업체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마트만 슈퍼마켓 사업을 하지 말라고 공박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신세계 (154,900원 ▼1,300 -0.83%) 이마트는 국내 대형마트 업계에서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영향력이 막대하다. 굳이 자영업자들의 밥줄까지 끊으면서까지 사업을 강행해야하는 건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슈퍼마켓은 ‘신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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