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작전' 빰치는 디카 신제품 경쟁

머니투데이 성연광 기자 2009.05.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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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도 모르게 하라"...네티즌 수사대 '가장 무서워'

'007 작전' 빰치는 디카 신제품 경쟁


"발표하는 기종이 뭔가요?"
"글쎄요. 와보시면 압니다."

지난 4월 13일. 니콘이미징코리아가 4월 14일 신제품 발표회를 한다며 사진취재 요청을 했다. 그러나 어떤 신제품인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신제품 발표당일. 니콘은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신제품인 'D5000'에 대한 보도자료를 그때서야 배포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니콘은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동시다발로 똑같은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카메라 업계의 신제품 발표는 그야말로 '007작전'을 방불케한다.

◇한 이불 덮고 살아도 '몰라'=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7급 공무원'. 두 주인공이 같은 것을 쫓는 첩보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체를 몰라 티격태격하는 내용이다. 카메라 업계가 바로 이렇다.



보통 본사의 전략제품에 대해선 출시 몇개월 전에 업무상 관계 직원만 알려준다. 이마저 전세계 동시발표 전까지 비밀을 지킨다는 단서가 달린다.

만약, 공개 누설됐을 경우, 해당 직원은 물론 소속된 해당법인도 본사로부터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게 이 바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 카메라제조사 한국법인 관계자는 "1~2년전에 일부 국가에서 현지법인에 의해 신제품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해당법인이 신제품 물량 배정에서 크게 불이익을 당했다"면서 "일본 본사 교육에 참가하면 '(신제품 정보는) 집안의 배우자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제품 출시를 앞둔 몇일 전부터는 더욱 신경이 예민해진다. 카다로그, 신제품 출시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부 대행사 직원에 의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 대행사 계약 조건에 '비밀유지'를 최우선 조건으로 내거는 이유다.

카메라 신제품 정보가 이처럼 '기밀' 취급을 받는 이유는 후속제품 출시 정보가 사전에 노출될 경우, 전세계적으로 기존 제품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구매가 미뤄지면서 제조사의 영업정책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쟁사들에게 신제품 정보가 넘어갈 경우, 출시 일정이나 가격 정책 등 모든 면에서 경쟁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비밀유지 가장 큰 적, '네티즌'=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보안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출시 전 정보가 노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네티즌'의 추적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끈질긴 추적(?)은 제조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3~4월이면 전 세계 네티즌 수사대가 신제품 정보수집 경쟁에 불을 뿜는다. 국내도 SLR클럽을 비롯 각종 카메라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카더라' 통신이 흘러넘친다.



여기에는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높인 뒤 초기 흥행돌풍을 일으키겠다는 마케팅 전략도 숨어있다. 각종 '루머'에는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반영돼 있기 때문. 실제 제품 개발 중간에 이용자들이 올린 루머를 반영해 사양을 변경한 사례까지 있다.

캐논과 니콘이 올해의 전략기종으로 내놓은 'EOS 500D'와 'D5000'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정식으로 소개되기 2~3달 전에 이미 커뮤니티에서 올라왔던 루머와 거의 일치했다.

한편 이같은 비밀유지와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은 카메라 업계의 성능과 기술,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윤활유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날로 높아지는 사용자의 관심이 기술개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은 사실"이라며 "개발당시부터 각종 게시판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최근 개발 트랜드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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