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스타일 있는 기업 없나요"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09.04.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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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 오늘날만큼 결여된 시대도 드물다. 우선 남 위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89년 발표한 '남자들에게'라는 수필집에서 이렇게 개탄했습니다. 그리고 시오노의 20년 전 푸념(?)은 국내 업계에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스타일' 있는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내 CEO들을 살펴보면 대동소이한 경영철학을 가진데다 지주사나 그룹 이사회를 의식한 때문인지 무색무취한 행보를 보입니다.

재미없는 CEO 일색인 국내 업계에서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는 CEO를 꼽는다면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기업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국내에선 보기드문 경영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은 단순히 디자인이나 건물 인테리어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키라는 이름의 그리스인 부호가 쓴 '하이라이프'(High Life)라는 책을 보면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면 기업 전반을 관통하는 그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스타일'이겠지요.

정 사장의 집무실 벽에는 각기 다른 느낌의 이미지 컷이 여럿 붙어있습니다. 모던한 느낌의 사진과 클래시컬한 이미지, 미니멀적인 작품사진과 빈티지풍의 모델사진까지 다양합니다. 기자는 이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정 사장이 추구하는 스타일의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고, 진보적이면서 보수적이며, 실용적이면서도 깐깐하고, 깔끔한 정장과 산악자전거와 같은 이율배반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남성. 이게 바로 정 사장이 추구하는 스타일이자 현대카드에 투영하고자 하는 철학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같은 철학은 회사 곳곳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정 사장을 비롯한 고위임원들의 집무실 책상은 여느 기업과 달리 벽을 향해 있습니다. 마치 학생들의 공부방 책상 배치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데다 책상을 중심으로 수납공간을 여럿 둘 수 있어 편리하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컵, 엘리베이터, 휴게실까지 이같은 스타일이 배어 있습니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을 보면 "위대한 기업의 CEO는 '유명인사'(celebrity)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저자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위대한 기업의 CEO는 언론 등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내실을 다져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 사장은 그간의 업무성과와 색깔 있는 경영으로 유명인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제 현대카드가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정 사장은 짐 콜린스의 연구에서 예외적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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