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왜 펀드를 해약했나"

머니투데이 박영암 시장총괄데스크 2009.04.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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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와치]"개인의 펀드이탈은 자산관리업계에 자기반성 요구"

"개미는 왜 펀드를 해약했나"


"이제 2007년같은 펀드 전성시대는 다시 오기 힘들겠지."
개인들이 적립식 펀드를 깨고 직접 투자에 나서자 여기저기서 펀드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들린다. 설사 펀드에 다시 투자하더라도 적립식이나 거치식보다는 직접 매매할 수 있는 ETF(상장지수펀드)를 더 선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개인들이 펀드를 외면하는 징후는 증권통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주식펀드 설정액은 연초이후 줄곧 140조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최고 전성기였던 2008년8월의 144조원에 비해 4조원 가량 줄어들었다(이하 모두 21일 기준). 반면 개인들이 직접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고객예탁금은 연초 9.3조원에서 15.4조원으로 6.1조원 증가했다



최근 4년간 펀드에 열광했던 개인들이 직접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과 수익률의 적절한 조화를 꾀하는 펀드보다는 개별종목에 승부를 걸어, 고수익을 취하려는 계산이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올해 주식펀드중 최고수익률은 70%. 반면 100%가 넘는 개별종목은 수두룩하다. 바이오 LED 종목은 지난해 펀드손실을 만회하고도 상당한 수익을 안겨줬다. 이같은 고수익률에 개인들이 직접투자의 유혹을 외면하기 어렵다. 물론 코스닥 개별종목의 위험대비 수익률을 놓고 본다면 반드시 펀드보다 높지 않다는 항변도 나오지만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



판매사와 운용사의 구태도 펀드이탈의 또 다른 시발점이다. 지난 2004년이후 적립식펀드 붐을 타고 외형은 급격히 성장했지만 판매채널과 운용사는 고객의 높아진 기대를 충족하는데 실패했다.

70대 노인한테 파생상품펀드를 판매해서 법정까지 가거나 간판 펀드매니저가 소리소문없이 타사로 이직하는 모습에서 ‘선량한 자산관리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특정 펀드가 인기를 끌면 경쟁적으로 모방 펀드를 출시하는 운용사한테 시장발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찾기 힘들다. 사장을 수시로 교체하는 은행계와 재벌계 운용사에게서 업계 발전을 위한 100년 대계를 세우고 차근차근 이를 실천해 나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전문가들도 수익률 부진보다는 이같은 자산관리업계 관행이 개인들의 펀드 이탈을 촉발시켰다고 지적한다. 고객의 이익보다는 운용사와 판매사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에 개인들이 펀드를 외면하게 됐다고 인정한다.


개미들이 과거보다 조직화되고 전문화된 점도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번에 10억원 이상 주문하는 큰 손들도 적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들어 10억원 이상 거액 주문건수가 3월(44건)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 이들 ‘슈퍼 개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별종목에 투자, 200~300%의 고수익을 올렸다는 전언이다.

또한 개인들은 각종 유료 투자정보 업체의 종목정보를 이용, 일사분란하게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전직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가 개인들의 투자방향을 조율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업분석능력과 시장예측능력이 부족했던 과거의 ' 개미'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얘기다.



특히 이들의 ‘히트 앤드 런’ 매매는 요즘같은 국면에서는 펀드보다 유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특정 박스권을 정해놓고 개별종목을 매매하는 것이 펀드보다 유리하다고 평가한다.

이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개인들의 펀드이탈은 자산관리업 종사자들에게 냉혹한 자기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 믿음을 바탕으로 고객자산을 증식시키는 자산관리업의 전문성과 도덕성 윤리성이 근저에서 불신받고 있어서다. 개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운용능력 제고 뿐만 아니라 판매와 사후관리 등에서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 요구된다.

자산관리업계도 이미 변화에 나섰다. 과거 불완전 판매의 반성위에서 새로운 판매방식을 도입했다. 고객의 위험성향과 기대수익을 사전에 분석, 합당한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담시간이 많이 걸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하지만 고객자산 증식이라는 금융회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좀 더 인내를 갖고 정착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자기만의 투자철학으로 인정받는 운용사의 등장도 시급한 과제다. 비록 신영 한국밸류 등 몇몇 운용사들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는 시장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정회사의 매매전략을 추종하면서 자기색깔을 잃어버리는 운용사는 앞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 불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된 운용철학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판 '오마하의 축제'를 준비한 모 자산운용사의 노력은 자산관리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운용철학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에게 종목선정 이유와 향후 시장전망을 들려줄 때 펀드매니저와 회사에 대한 고객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 질 것이다. 비록 특정회사의 행사지만 개인들의 펀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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