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잉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사상 최대의 추경을 추진하는 등 유동성 공급 확대라는 정책 기조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유동성 역습'에 대한 우려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시작한 지난해말부터 존재했다. 당시에도 "유동성은 충분한데 단지 순환이 되지 않을 뿐"이라는 진단과 함께 정부의 유동성 공급 확대 정책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왔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망라한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의 재정지출 확대를 결의한 것도 정부에게는 큰 힘이 됐다.
하지만 4월들어 일부 경기지표가 호전되고 증시 반등과 강남권 부동산 가격 상승이 가시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800조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자금이 불쏘시개로 작용해 과열 투기 양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어서다.
국회에서도 과잉 유동성 대책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800조원은 분명 과잉 유동성"이라고 답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단기 유동성이)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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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을 이끄는 수뇌부에서 과잉 유동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시장에서는 정부의 경기부양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많아졌다.
이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과잉 유동성 우려에 대한 원론적인 언급일 뿐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모 금통위원도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때를 대비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지금 경기가 상승 기조로 바뀌었다든가 바닥을 찍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럼에도 주택담보대출의 뚜렷한 증가 없이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것은 갈 곳 없는 유동성이 투기화되고 있는 증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정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증시와 부동산 시장에서는 과열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위기로 실질적인 고통을 겪는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확대, 소비 증진을 위해서는 공급확대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잉 유동성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자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으나 경제정책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현재는 경기부양 기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