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음료가 인기인데, 왜 안만든다는거요?"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09.04.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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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불만제로] 5-1. 롯데칠성 안성공장, 어셉틱 라인의 비밀

편집자주 【편집자주】몇 년 전 한 음료업체 제품에 독극물을 주입시키고 제조사를 협박한 블랙컨슈머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수십억 원을 요구한 블랙컨슈머는 법의 처벌을 받았다. 해당 기업은 피해도 컸다. 반면, 롯데칠성음료는 굵직한 안전 이슈 없이 음료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운도 따랐지만, 안전관리에도 과감히 투자를 해왔다. 시장 규모도 작은 차 음료에 대대적인 설비투자를 진행한 건 선두업체가 아니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롯데칠성음료 안성공장을 찾아 불만제로를 향한 회사 측의 노력을 들여다봤다.

"쌀 음료 정말 안 할 거요? 저렇게 잘 팔리는데."
"그러다 사고 터지면 책임질 거요? 절대 안됩니다."

94년, 쌀로 만든 곡물배합음료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업계 1위 롯데칠성음료가 욕심을 안 냈다면 거짓말이다. 영업 쪽에서는 성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중앙연구소가 한마디로 '목숨 걸고' 결사반대했다. 연구소로서는 제품 안정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쌀이나 보리, 현미 등 곡물은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영양분이다. 탄산음료를 비롯해 기존의 생산라인에서 그대로 제조하면 제품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방형탁 롯데칠성 안성공장장은 "마케팅과 연구소 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무균(어셉틱·Aseptic) 생산 설비를 들여오지 않는 한 생산할 수 없다는 쪽으로 매듭지어졌다"고 회고했다.

단기 경영 성과를 생각하면 일단 출시하는 게 맞았지만, 업계 1위인만큼 '장사'보다 '공신력'을 생각해야했다는 설명이다. 방 공장장은 "똑같이 불량이 나와도 롯데칠성에서 그런 것과 다른 기업에서 그런 것에 대해 소비자들의 체감지수가 다르다. 신제품 출시로 매출이 늘어나도, 클레임 이 높아진다면 결국 회사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밝혔다.



그 후 꼭 13년 만에 롯데칠성은 안성공장에 곡류배합음료와 여러 가지 원료가 섞인 혼합차 생산에 최척화시킨 '무균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필요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무균생산라인에는 324억원이 투자됐다. 롯데칠성의 단일라인 투자금으로는 최대 액수다.
↑롯데칠성음료의 무균생산라인. 외부와 차단된 채 무균 설비 내부에서 음료가 충전되고, 페트병과 병마개까지 완벽한 살균과정을 거친다. ⓒ롯데칠성 제공.↑롯데칠성음료의 무균생산라인. 외부와 차단된 채 무균 설비 내부에서 음료가 충전되고, 페트병과 병마개까지 완벽한 살균과정을 거친다. ⓒ롯데칠성 제공.


◇무균충전 실현, 2차 오염 원천 봉쇄=도대체 무균생산라인이 무엇이기에 설비를 갖추는 데 13년이나 걸렸을까.

어셉틱(Aseptic)은 사전적으로 무균을 뜻한다. 무균생산라인은 페트병 음료를 충전하고 병마개로 닫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세균을 원천봉쇄해, 음료를 가열할 필요 없이 상온에서 병에 충전시킨다. 반면 기존의 생산방식은 별도의 무균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음료액을 가열하는 것으로 세균을 없앤다.

일본청량음료공업회에 따르면, 차를 주성분으로 하는 음료는 차의 폴리페놀 성분이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에 완벽한 멸균상태에서 만들지 않아도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pH 4.6 이상의 저산성음료인 혼합차와 곡물배합음료는 폴리페놀 함량이 적어 단순히 음료를 가열한다고 해서 내열성 세균 아포의 발아를 억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무균충전(Aseptic Filling)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99.999%의 균을 제거하는 무균환경은 어떻게 가능할까. 롯데칠성은 생산 개시 7시간 전부터 기계 내·외부를 세척하고 스팀살균 과정을 통해 무균 상태의 생산 조건을 유지한다. 살균수, 과산화수소, 스팀 공기, 등을 통해 무균상태로 만드는 데만 생산 전 5시간, 생산 후 3시간을 합해 총 8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생산 준비과정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에 실제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된다. 그만큼 생산단가는 높아지지만 안정성도 높아진다.

무균생산 라인은 음료를 페트병에 충전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반 페트병 음료 생산라인과 달리 음료를 뜨겁게 가열하지 않고, 20℃의 상온에서 병에 주입한다. 음료 충전기와 페트병 입구는 접촉되지 않아야 한다. 접촉 시 오염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각 생산 공정의 기기들이 블록으로 둘러싸져 외부와 완벽히 차단돼 있어 한 공정에서 다른 공정으로 옮겨갈 때는 물론이고 개별 공정에서도 외부 공기와 맞닿지 않는다. 사람의 손이 닿을 일도 없다.
"쌀음료가 인기인데, 왜 안만든다는거요?"
◇페트병·마개까지 멸균, 클레임 '0' 도전= 무균생산라인에는 일반 음료 생산라인에는 없는 페트병과 병마개 멸균공정이 포함돼 있다. 페트병을 35%의 과산화수소를 110℃에서 분무해 멸균한다. 120℃의 뜨거운 에어압력으로 건조시켜 멸균력이 가중되면 다시 68℃의 무균수로 내부를 세척한다. 병마개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칠성 안성공장이 자체 실험한 결과, 페트병을 멸균하지 않고 생산할 경우 오염으로 인한 불량률은 3.67%에 달했다. 병은 멸균하되, 병마개를 멸균하지 않으면 불량률이 1.41%를 기록했다. 그만큼 용기와 마개를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롯데칠성은 페트병을 아예 자체로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차 음료는 생산 후 1주일간 공장에 보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혹여 제품이 변질되지 않는지 이상 징후를 확인한 후에야 시장에 출고한다.

방 공장장은 "무균충전 설비에서 생산된 차 음료는 유통과정에서도 미생물 사고가 적고 가열과정을 거치지 않아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다. 제품 고유의 향이 손실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시중에 유통되는 차 음료 중 적지 않은 제품이 일반 내열처리를 통해 생산된 것"이라며 "어셉틱 설비로 무균충전된 음료는 페트병 내부의 액면이 보이는 반면 열충전 제품은 액면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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