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 무사귀환에 노측 안도-패읽힌 검찰 난감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2009.04.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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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검찰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신의 무사귀환으로 상대방의 '카드'를 알게 된 노 전 대통령 측은 간만에 안도의 숨을 내쉰 반면 검찰은 '숨겨진 무기'를 상대에게 오픈한 셈이어서 수사에 큰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 전 대통령 소환에 앞서 '히든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됐다.



정 전 비서관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연철호씨에게 건넨 500백만 달러와 권양숙 여사가 받은 것으로 알려진 100만 달러의 '의혹'을 풀어줄 핵심고리였다.

우선 검찰은 정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정씨가 구속되면 노 전 대통령 측이 입을 맞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진다고 판단한 것.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정씨가 구속될 경우 '눈 가리고 움직이는 바늘에 실을 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지난 7일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아 노 전 대통령 측에 전달한 혐의로 정씨를 전격 체포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의 대응도 바로 나왔다. 정씨가 검찰에 체포되자 "정 전 비서관이 받고 있는 혐의는 자신들의 것"이라는 취지의 고백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상문 구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인 셈이다.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고백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몇몇 언론사가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전격적인 사과문 발표를 하면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의미의 분석 기사를 내보냈지만, 검찰은 이미 그 속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의도를 발 빠르게 간파했던 것이다.

이에 검찰은 8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2004년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상품권 1억여원, 2006년 받은 현금 3억원 외에 추가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2년여에 걸쳐 받은 수천만 원의 돈까지 적시했다.

검찰은 또 정 전 비서관이 1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 측에 전달한 부분에 대해 뇌물 수수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에 노 전 대통령측이 편의를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 측은 이날 영장실질 심사를 마친 뒤 "검찰이 제기한 공소 내용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것은 검찰의 시각이며, 모든 사실 관계를 다 인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의 주장과 달리 박 회장으로부터 상품권은 전혀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박 회장의 진술에 크게 의존한 검찰 주장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 든 것이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사전 구속영장에 적시한 정씨의 범죄 사실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통해 정 전 비서관의 손을 들어줬다.

발 빠르게 진행되던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검찰은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서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 하겠다"는 방침을 즉각 발표했다.

하지만 법조 일각에선 정 전 비서관의 영장 기각 여파는 향후 노 전 대통령 수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분분하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서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받은 것으로 확인된 100만 달러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향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통해 구체적인 대가성을 밝히지 못하고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면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너무 빠르게 자신의 '패'를 오픈한 검찰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 측이 최악의 국면을 모면한 것일 뿐 상황을 완전히 반전 시킨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나온다. 즉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검찰의 의도를 살짝 엿본 수준이라는 것이다.

100만 달러를 받은 혐의가 분명하고 연씨가 500만 달러를 받는 자리에 아들 건호씨가 동행한 사실이 밝혀진 상태에서 더 이상 퇴로가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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