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맥주공장' 신설 검토.. 그 파장은

머니투데이 원종태 기자 2009.04.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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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오비맥주를 인수하지 않고 새 맥주공장을 짓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롯데가 이같은 방침을 실행한다면 매물로 나와있는 오비맥주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맥주시장이 '하이트 대 오비'의 2강체제에서 3파전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2일 주류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맥주회사 신설' 검토 방침은 오비맥주 매각주체인 인베브와 인수의사를 밝힌 사모펀드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딜의 구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중순만해도 롯데그룹은 회사 신설을 통한 맥주시장 진출 가능성을 공식 부인해왔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이같은 입장을 급선회, 제3의 맥주공장 신설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팽팽한 가격차, 인베브 '압박용'=전문가들은 일단 롯데그룹의 이같은 방침 선회가 인베브에 대한 압박카드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인베브는 오비맥주 매각가격으로 20억달러(1350원 환율기준 2조7000억원)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승자의 저주'(과도한 비용으로 기업을 인수해 겪는 후유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수가격이 2조원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 전문가들도 "M&A에 자주 쓰이는 현금흐름할인방식(DCF)으로 오비맥주 적정가치를 계산하면 1조7700억원 정도"라며 "이보다 비싸게 인수한다면 수년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동부증권 차재헌 애널리스트는 "인베브가 원하는 수준인 20억달러 안팎으로 인수가격이 결정된다면 인수자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M&A 실익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인베브가 지난 2004년 이후 수년째 설비 재투자를 극도로 아끼는 긴축 경영을 펼친 것도 인수금액 책정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인수자가 인수금액 이외에 추가로 대규모 설비투자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화증권 박종록 애널리스트는 "설비 유지보수가 양호하고 시장점유율(58.2%)이 더 높은 하이트맥주 시가총액이 1조3300억원(2일 종가기준)에 그친다"며 "맥주업계 진입장벽을 감안해도 오비맥주 인수가격의 적정 마지노선은 1조8000억원 이하다"고 했다.



롯데그룹이 맥주회사를 신설할 경우 오비맥주를 인수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시장 진출이 가능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유통망 구축 등 신규회사 설립 리스크가 있지만 전체적인 회사 설립 비용은 2조원 이하로 오비맥주 인수보다 적게 들 것"이라며 "롯데의 맥주회사 신설이 몰고올 고용과 설비투자 효과를 감안하면 주류제조 면허도 의외로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인수 경쟁자 견제 목적도=롯데의 맥주회사 신설이 어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오비맥주 인수전에 뛰어든 사모펀드 경쟁자들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롯데가 오비맥주를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맥주회사 신설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은 인수 경쟁자인 사모펀드에게 위협적"이라며 "맥주시장이 3강 체제로 바뀐다면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챙겨 떠나는 사모펀드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안정적으로 시장점유율을 양분하는 현 맥주시장 구도와 달리 제3의 경쟁자(롯데)가 나오면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마케팅 경쟁이 불붙으며 판매관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는 것도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4~2005년 맥주 페트병 출시를 계기로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가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여 영업이익률이 전년보다 각각 5~6%포인트 감소했다"며 "오비맥주를 인수할 사모펀드라면 3자 경쟁이 절대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사모펀드는 롯데의 맥주회사 신설을 가정할 때 오비맥주 인수가격을 당초보다 낮출 수 있고 이런 변화가 롯데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베브는 다음주 오비맥주 데이터룸 실사를 허용한 일부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오비맥주 입찰서를 다시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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