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금융자본주의에 골병든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09.04.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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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은 대량살상무기"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로 유명한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교수가 2일 국회를 찾았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주최의 '세계경제위기와 한국경제' 토론회에 강연자로 나선 장 교수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금융자본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본시장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금융업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1분기 안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실물경제를 골병들게 한다"며 "금융자본주의체제가 문제인데 자본시장을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경영위기에 처해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예로 들며 "기술개발은 안하고 자꾸 금융에서 딴짓을 하거나 비용절감만 하다보니 파산이 얘기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파생상품과 관련해 "금융상품만 안정검사 없이 팔
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식품위생법을 없애 놓고 국가적인 식중독 사태가 일어났을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지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금융파생상품을 금융자본주의의 꽃이자 악영향이 큰 대량살상무기로 비유하며 판매 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IMF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 개방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부터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며 고부가가치 산업 금융업을 키우겠다고 한 것도 세계 금융의 실패 사례에서 그 허망함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금융 중심의 경제구조가 불러온 세계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본시장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식으로 전 세계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우리 나라 수준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다만 재정지출을 복지 부분에서 확대해 국민들이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게 하는데 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금융업 같은 쉬운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40-50년 동안 피땀흘려 성장시킨 제조업이 아직도 핵심이라며 그 기반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규제완화 등 정부가 지금 하려는 것만 안해도 도움이 된다"며 "기본에 충실하자는 식으로 돌아가 기술을 개발하고 교육훈련에 투자하는 정도(正道)를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당면한 경제현안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해 "안 해도 될 것을 했다"며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해야 득이 되는데 미국과 우리 나라는 경제력 차이가 너무 커 얻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한미FTA 비준안을 먼저 처리해 미국에 압박을 가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브라질보다 중요하지 않은 나라이기에 선(先) 비준한다고 미국이 해주지 않는다"며 "상황도 바뀌었고 문제가 더 심각해졌으니 이럴 때 비준하지 않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은행의 사금고화보다 재벌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을 통해 쉽게 돈 벌 생각을 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지적했으며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망해버린 IB(투자은행) 모델을 추구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은행을 민영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한편 이날 강연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박병석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박지원 유선호 박영선 김동철 신학용 이용섭 등 20여 명의 의원들이 참석해 장 교수의 유명세를 반영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민주당도 그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 밝혀졌으니 과감하게 잘못했다고 얘기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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