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한국판 '터너리포트' 준비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2009.03.3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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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창 원장 "창으로 베개 삼은 1년 "

침과대단(枕戈待旦)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창을 베개 삼아 자면서 아침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전쟁에 임하는 자의 각오와 자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매일 매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 원장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지난해 9월 리먼사태 이후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할 전담부서도 설치됐다.



건설·조선사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옥석 가리기’를 마무리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채권단 중심으로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과 퇴출 대상을 선정하도록 해 시장 기능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도 갖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부도가 난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의 또 다른 화두는 ‘중소기업’이다. 기업은행장을 거친 그이기에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잠재력 있는 기업이 금융회사의 잘못으로 문을 닫는 것은 ‘사회적 죄악’이라고까지 했다.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로 중기대출을 급격히 줄일 조짐을 보이자 중기 지원대책반을 바로 설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요 공단에 현장지원반까지 만들어 중기대출을 직접 챙겼다. 올 2월과 3월에는 지방에 있는 현장지원반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 듣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중기대출이 월평균 3조원 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최근 일부에서는 높아지는 연체율을 감안할 때 중기대출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김 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연체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대출 자체를 축소해선 안된다”며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기업 지원은 함께 가야지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말한다.


지금 김 원장의 시선은 금융위기 이후로 향하고 있다. 은행의 자본확충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 체력을 비축했고 금융시장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만큼 더 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김 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위기가 진정되고 나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가져 올 부작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유동성 확대로 과거처럼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데다 주식시장의 변동성 또한 커질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한국판 터너 리포트도 준비하고 있다. 로드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FSA) 의장은 최근 금융위기의 원인과 금융감독업무의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담은 리포트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당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하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금융감독기구 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김 원장은 지난 27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자세를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자신만의 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어떻게 풀어낼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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