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위기 때 투자 늘린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김지산 기자 2009.03.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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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위기 이후를 준비한다]대규모 설비 증설, R&D 투자 등 '위기 때 당금질'

지난 1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열연공장 야적장. 라인을 갓 빠져나온 무게 20톤 짜리 열연코일(긴 철판을 말아놓은 것) 수백개가 2단으로 쌓여있다. 열연코일은 그 무게 때문에 아래에 놓인 열연코일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 1단만 놓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열연코일이 1단씩 놓여있었지만, 최근 재고가 늘면서 야적장의 공간이 부족해 2단으로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세기 최악의 경기침체로부터 철강업계도 자유롭지 못하다. 포스코는 1분기 90만톤의 감산을 단행하고 있지만, 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2분기도 약 90만톤의 감산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철강업계의 시선은 현재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경기가 언제가는 침체를 끝내고 살아날 것이며 미리 준비하지 않은 곳은 경기회복의 단물을 맛보지 못할 것임을 이들은 알고 있다. 규모의 결제를 실현하고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는 위기 상황 이후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를 준비하며 선제적 투자에 나서고 있는 철강업체들을 살펴본다.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감산에 돌입한 포스코. 그러나 이 와중에도 향후 철강경기 회복에 대비해 올해 국내 6조원과 해외 1조원 등 총 7조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포스코는 우선 전남 광양제철소에 1조8000억원을 들여 연간 생산량 200만톤 규모의 후판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2010년 7월 이 공장이 완공되면 포스코의 후판 생산량은 연간 700만톤 이상으로 늘어난다. 세계 최대 후판 생산량이다.

포항제철소에도 1조4000억원이 투입되는 신제강공장 건설이 추진 중이다. 100톤 규모의 전로가 들어선 1제강공장을 대체할 수 있는 300톤 규모의 전로를 갖춘 새 제강공장을 세우는 공사다. 포항과 광양의 각각 제4 고로(용광로)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는 계획도 잡혀 있다.


현대제철은 무려 5조8400억원을 투입, 충남 당진에 연산 800만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 중이다. 내년 4월 가동이 목표다.

일부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현대제철의 판단은 다르다. 내년초 철강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할 때에 맞춰 물량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이 준비 중인 일관제철이란 철광석과 석탄으로 쇳물을 만드는 '제선',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철강 반제품을 눌러 후판 등 철강제품을 만드는 '압연' 등의 공정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관제철소는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뿐이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가 완성되면 우리나라에서는 2번째로 일관제철소를 가진 회사가 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7년 일관제철소 설립계획을 발표한 뒤 30여년 만에 현대 일가의 숙원이 이뤄지는 셈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1주일에 1∼2차례씩 현장을 방문하며 독려한 결과, 2월 중순까지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용광로) 1∼2기의 종합 공정률은 58%에 달했다. 당초 목표의 103%에 해당한다.

공사의 빠른 진척을 바탕으로 현대제철은 일관제철소의 일부인 조선·토목용 후판공장의 시험운전 시점을 생산 목표 시점인 올 12월보다 4개월 앞선 8월로 잡았다. 철강업계에서는 통상 시험운전을 생산 3개월 전으로 잡는데 이보다 1개월 빠른 것이다. 본격적인 생산 이전에 불량률을 최대한 낮추고 품질을 높여 시장에 조기 안착하기 위함이다.

현대하이스코는 경기 상황에 맞게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연구개발(R&D) 등의 투자를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현대하이스코 관계자는 "당장 투자를 대규모로 늘릴 계획은 잡혀 있지 않지만, 자동차 가전용 고급 냉연강판 분야의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당진에 연산 150만톤 규모의 후판공장 건설을 위해 9500억원을 투입 중이다. 오는 11월 완공될 예정인 후판공장의 현재 공정률은 70% 이상. 이 공장이 완성되면 매출액이 1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총 4700억원을 투자, 인천제강소의 노후 설비를 최신 친환경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도 추진된다.

동국제강은 또 브라질에 1차로 연산 250만∼300만톤 규모의 고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이미 지난해 4월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베일(Vale)와 합작사까지 설립했다. 브라질에서 고급 쇳물을 만들고 한국에서 조선용 후판을 찍기 위한 것으로, 후판의 ‘글로벌 일관생산 체제’를 갖추기 위한 포석이다.

R&D 투자도 빠질 수 없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4월부터 포항에 중앙기술연구소를 건립하기 시작했으며 올 여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후 100여명의 석사급 이상의 연구인력이 상주하며 철강 R&D에 집중하게 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은 철저하게 선제적 투자에 따라 수익을 거두는 산업"이라며 "투자를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생각하고 불황기에 미리 해둬야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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