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석유공사 대형화

더벨 하진수 기자 2009.03.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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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자원개발 M&A]③경쟁국 국영기업 시장 선점...정부 늑장 대응

이 기사는 03월25일(08:5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의 대형화 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정부 출자 증액 및 민간자본을 동원한 자체 대형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합병 또는 지주회사 형식 통합 ▲외부 자금 유치를 통한 증자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과거 구조개편 논의 과정에서 검토됐던 완전 민영화나 사업부문 분할 매각 방식이 물가상승과 효율성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지주회사 형식의 통합 또는 합병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곧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가스공사와의 합병설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가스공사가 석유공사와 같이 100% 정부 출자기관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가스공사의 지분 중 33%를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공사와 합병할 경우 석유공사가 소유한 비축부문을 떼어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각 공사간 합병 후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도 문제가 됐다. 석유공사, 가스공사와 함께 광물자원공사(구 광업진흥공사) 등을 묶어 하나의 지주회사를 출범시킬 경우 이를 과연 누구 위주로 재편하느냐가 화두로 떠올랐다. 결국 이 방안은 의사 결정 과정상의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석유공사를 상장시키기 위해서는 비축부문을 떼어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석유공사의 자산이 감소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면서 "대형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향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합병이나 지주회사 전환은 여전히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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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나라가 정책상의 혼선을 빚을 때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은 국영정유업체를 중심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서며 세계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미국의 석유산업 주간 정보지 PIW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기준으로 세계 석유기업 가운데 한국석유공사의 순위는 95위를 기록했다. 이에비해 중국의 경우 세계 5위 석유기업에 랭크된 중국석유천연가스유한공사(CNPC)를 포함해 50위권에 3개의 기업을 포진시키는데 성공했다. 일본도 100위권 안에 4개사가 올라 있다.



더 이상 대형화를 미룰 수 없게 되자 정부는 가스공사와의 합병 대신 독자 대형화 방안으로 선회, 석유공사에 향후 5년간 정부와 민간 자금 19조원을 투입해 석유공사를 세계 50위권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정부 재정으로 오는 2012년까지 매년 8000억원, 총 4조1000억원을 석유공사에 출자하고 나머지 15조원은 석유공사 채권 발행이나 국민연금공단 차입 등 민간자본을 통해 추가 조달하겠다는 것.

그러나 민간자본 15조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관련 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민간자본의 경우 해외 M&A 추진이 가시화될 경우 즉각적인 조달이 가능하도록 국내 금융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15조원의 민간자금 조달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환율ㆍ유가 변동성 리스크 등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현재 석유공사의 하루 생산량과 매장량은 각각 7만7000배럴, 6억3000만배럴 수준. 정부는 해외 M&A 등을 통해 이를 오는 2012년까지 하루 생산량 30만 배럴, 매장량 20억 배럴 규모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향후 4년 동안 추가로 확보해야하는 매장량은 23억7000만배럴, 하루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매년 5만5700배럴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올해 석유공사가 페루에 위치한 페트로텍사 인수에 성공하며 획득한 원유는 하루 생산량 1만배럴 규모. 이를 확보키 위해 4억5000만달러를 투입한 점을 고려해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석유공사가 세계 50위권 진입을 위해 매년 필요로 하는 해외 M&A 예산은 25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원화로 환산할 경우 3조5000억원 수준.

민간자본을 포함해 정부가 매년 석유공사에 지원키로 약속한 금액은 4조7500억원. 따라서 위 계산대로라면 석유공사의 해외 M&A를 위한 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페트로텍사의 인수가격이 최초 18억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석유공사가 매년 필요로 하는 예산은 7조원으로 급등한다. 인수금액을 절반으로 낮추는데 성공했던 석유공사의 성공 사례가 정반대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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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가 지난 5년간 해외 광구나 기업에 대한 M&A에 나서 딜을 성사시킨 사례는 총 3건으로, 규모는 14억8000만달러 수준이다.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은 각각 7차례, 12차례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규모도 147억6000만달러와 35억4000만달러를 기록해 석유공사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경쟁국 대비 뒤쳐지는 해외 M&A 경험도 석유공사의 약점으로 꼽힌다.



지난 1월 나이지리아 정부는 석유공사와 한국전력 등으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에 대한 심해광구 탐사계약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통보했다. 경쟁관계에 있던 인도의 ONGC사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이 계약 백지화의 이유였다.

석유공사는 나이지리아측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해옴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인도측에 비해 부족했던 경험이 계약 실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한편 석유공사는 이달 초 해외 M&A 인수자문사 선정을 위한 RFP를 마감하고 숏리스트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석유공사는 이달 내로 인수자문사를 선정한 뒤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의 생산유전 보유 기업을 인수하는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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