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의 M&A 한계

더벨 하진수 기자 2009.03.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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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자원개발 M&A]②미수금 많아 펀딩 불리...의사결정과정도 문제

이 기사는 03월23일(09:3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국가스공사 (50,800원 ▲3,700 +7.86%)(KOGAS)는 최근 해외 인수합병(M&A)을 위해 국내외 IB들을 대상으로 인수제안서를 접수받아 메릴린치를 인수자문사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경제성을 감안해 연간 5000억 입방피트(0.5TCF) 이상의 매장량을 보유한 광구 등을 위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 가스공사의 계획이다.



그러나 해외 M&A 경험이 전무한데다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려워 본격적인 인수전 돌입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가스공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선결과제는 자금 부족이다. 가스공사는 정부 지원분 외의 필요 자금을 해외차입이나 공사채 발행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복안이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1TCF(1조 입방피트)가 보통 7억5000만달러에서 10억달러 수준에 거래되는 것을 고려할 때 가스공사가 목표로 삼고 있는 매장량 5000억 입방피트(2000만톤)의 인수금액은 5억달러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추산된다. 원화로 환산할 경우 7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타깃을 찾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 가스공사가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2500억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가스공사는 최근 해외차입을 통해 5억달러를 조달하겠다는 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조달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가스공사의 지나친 손실률로 인해 민간기업 대비 사채 발행 성공률이 높은 공기업 특유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스공사는 매출액 23조1661억원, 영업이익 6359억원, 당기순이익 3308억원을 달성했다. 외형상 양호한 실적을 기록한 것 같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 2007년 1756억원이던 누적미수금은 지난해 3조4500억원으로 불어났다. 2개월마다 조정돼 오던 가스요금이 지난해에는 단 한차례 인상된데 따른 것이다. 가스공사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3000억원이 넘게 투입된 정부 보조금과 함께 5조원에 육박하는 공사채 발행 덕이었다.

올해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 8000억원 규모의 공사채를 발행, 지난해 228% 수준이었던 부채비율은 현재 438%로 두 배 가까이 뛴 상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시장에서는 가스공사가 발행한 공사채 인수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가스공사는 가스 요금 현실화를 통해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계획이지만 정부 정책이 당장 요금 인상을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미수금 해결을 통해 가스공사가 부채비율을 낮추지 않는 한 공사채 발행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유동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아울러 이 같은 실탄 부족 현상은 협상력 저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중국이 해외자원개발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해외자원개발기금 조성, 저리 융자 제공 등의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충분한 실탄 마련에 실패할 경우, 석유공사는 한정된 예산에 묶여 M&A를 진행해야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결단력 부족도 가스공사가 해결해야 할 난제로 꼽힌다. 주무 부처와의 의견 조율 등 복잡한 의사결정 작업이 자칫 M&A 성사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별도의 자문사를 두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외 매물을 물색해 오던 가스공사는 최근 인수자문사를 뽑는 과정에서 메릴린치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경험이 많은 인수자문사를 통해 구체적인 매물 탐색 작업에 나서기 위해서다. 가스공사는 메릴린치와의 자문 계약을 금명간 체결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가스공사가 지나치게 깐깐한 조건들을 내세우는 탓에 해외자원개발 경험이 많은 글로벌IB들도 선뜻 나서기를 꺼린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탓이다.

대표적인 예로 수수료를 들 수 있다. 가스공사는 인수자문사를 뽑는 과정에서 해외자원개발 경험, 프로젝트별 팀 구성원의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문 수수료를 누가 더 낮게 부르느냐가 관건이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물론 가스공사의 고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수료를 지불할 경우 감사철이 되면 '방만 경영'이라는 비난과 함께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번 자문사 선정이 구체적인 M&A 액션에 들어가기 위한 전략 마련 단계라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중국, 인도, 일본 등 경쟁국들이 치열한 에너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M&A 경험이 전무한 가스공사가 블루프린트 작성을 위해 국내외IB들을 상대로 인수제안서를 받는다는 것이 한가로워 보인다는 지적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M&A 시장 여건을 감안할 때 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국내외 IB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대상이지만 구체적인 실행까지 성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지나치게 깐깐한 조건과 M&A 진행 과정에서의 융통성 부족 등으로 좋은 매물을 한국 보다는 중국 등 경쟁국이 싹쓸이 하는 관례가굳어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글로벌IB들은공기업 대신 해외자원개발에 나서고자 하는 민간기업을 선호하고 있다.

초대형 딜을 계획하면서 인수자문사 수수료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가스공사의 한계가 모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자원개발 M&A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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