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보스만 판결, 물꼬와 장벽

정기동 변호사 2009.03.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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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유럽축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 1월 유럽축구계의 화제는 단연 이탈리아의 'AC 밀란' 소속 카카의 1억 파운드 이적설이었다.

중동의 아부다비 투자그룹이 인수한 '맨체스터 시티'가 역대 최고인 1억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터무니없는 금액의 이적설은 '설'로 끝났다.



'1억 파운드 이적’에 대해서는 축구를 망친다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었지만, 사실 축구클럽의 선수 이적은 필요 없는 선수를 팔아 필요한 선수를 사들이는 팀의 신진대사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다. 선수 입장에서도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더 나은 대우를 해줄 팀을 찾기 위해서는 이적이 필수적이다.

요즘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적료 없이 자유로이 새로운 팀과 계약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 이러한 이적 시스템이 확립된 것은 15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90년 벨기에 축구선수 장-마르크 보스만은 RC 리게와의 계약이 끝나자 프랑스의 US 덩케르크로 이적을 원했으나 덩케르크가 이적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무산되었다.



사건은 유럽사법재판소로 갔다. 1995년 유럽사법재판소는 프로선수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EC법의 적용 대상이 되며 계약이 끝난 선수에 대해서도 이적료를 부과하는 것은 로마조약 제4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회원국 노동자의 역내 자유이동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보스만 판결이다.

그 뒤 계약이 끝난 선수는 이적료 없이 완전한 자유계약선수로서 자신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선수연봉이 크게 상승하긴 하였지만 이 판결은 선수의 자유 이동을 보장하고 축구계의 막힌 혈류를 뚫음으로써 축구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보스만 판결은 법과 시장의 관계, 시장에서의 법의 역할에 관한 좋은 사례가 된다. 법의 본래 영역은 기존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보수적 작용에 있다. 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가두어 두는 저수지의 둑과 같은 역할이다. 법을 어겼을 때 따르는 제재는 법의 보수적 본질을 상징한다.


또한 법은 막힌 물길을 틔워 주는 물꼬의 역할도 한다. 사회의 변화에 법이 따라가지 못하면 저수지의 둑은 안전판이 아니라 건강한 흐름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고 만다. 물꼬를 터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법의 형성적 작용이다. 보스만 판결은 유럽축구의 물꼬를 튼 판결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법과 법원의 역할이 커지면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과 판결을 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부동산 세제와 관련해서는 종합부동산세법의 핵심 규정이라 할 수 있는 세대별 합산과세와 1주택 보유자 과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도 그랬지만 1가구 다주택자와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고 1주택 소유자와 동일한 기본세율을 부과한다는 기획재정부의 최근 세제개편안도 마찬가지이다.



기획재정부는 기존의 중과세가 부동산 시장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했던 만큼 조세원리와 시장기능에 맞도록 정상화하고, 부동산 가격안정이나 투기문제는 주택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중심의 금융운용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가 수립한 '징벌적 세금'으로 인해 경색된 부동산 시장의 물꼬를 튼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주택과 토지 보유에 대한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 자산계층이 주택을 더 사들일 수 있도록 하여 투기를 용인하게 되고 경기상승기에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실수요자의 주택구입을 더 어렵게 할 높고 두터운 장벽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란의 결론은 뜻밖에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내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의 말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에게 가능한 한 세금을 중과해서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해야지, 세금을 감면하는 방법으로 내놓게 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도 있고 부동산 투기자들에 대해서 혜택을 주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양도세 중과 폐지가 물꼬가 아닌 장벽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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