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의 '모순'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09.03.0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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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도우려다 中企 잡아

어음폐해 방지 목적.. 16조원 시장
대기업 못갚으면 협력사 책임져야


실물어음의 폐해를 줄이고 중소 하청업체의 금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전자방식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이하 외담대)이 당초 취지와 반대로 영세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계약상 대기업이 갚지 않은 채무를 이들이 대신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밟는 신성건설의 협력업체 90개사는 최근 W은행을 상대로 금융당국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외담대로 신성건설의 채무를 자신들이 고스란히 부담, 135억원의 피해를 입게 됐다는 게 이유다.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의 '모순'


2001년 2월 한국은행이 도입한 외담대는 구매기업(대기업)이 전자방식으로 발행한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판매기업(하청업체)이 거래은행에서 대출받고 만기일에 대기업이 은행에 대출금을 갚는 금융상품이다. 모든 결제가 전자방식으로 완결돼 어음 발행을 줄이고 납품업체의 현금흐름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자금난에 봉착한 신성건설이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만기가 돌아온 외담대를 갚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은행은 신성건설의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받은 하청업체들에 상환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출금 연체 사실을 금융거래 전산망에 등록하겠다고 통보했다. 대부분 외담대는 계약서에 대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하청업체가 대신 책임진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W은행 관계자는 "계약조건에 따른 합법적인 대출금 상환 요구"라며 "우리뿐 아니라 외담대를 취급하는 대부분 은행도 비슷하게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이 외담대를 놓고 통화옵션 파생상품인 키코(KIKO) 사태처럼 은행권과 분쟁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은행권의 외담대는 모두 16조2642억원에 달하고 상당수 시중은행에서 W은행과 유사한 다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W은행은 신성건설 등 5개 주계약업체와 외담대 거래에서 802건, 622억원의 미결제가 발생했다.

은행권은 이 상품의 구조적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대책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상품 자체의 문제점을 현재 검토 중"이라면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시중은행들은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이달중 외담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가동 여부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외담대가 은행권 공동상품이어서 개별 은행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솔직히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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