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이 ABCP로 포장돼 팔린다

더벨 황은재 기자 2009.03.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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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는 투자 불가, ABCP로 바꾸면 'OK'

이 기사는 03월04일(11:5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올들어 구조화·파생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CP 만기가 1년 미만이어야 한다는 만기 제한이 풀리면서부터다.



파생상품을 유동화한 ABCP는 자산운용사나 서민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팔리고 있다. 이들 기관은 약관이나 내부 규정으로 파생결합증권(DLS)이나 구조화채권에 대한 투자에 제약을 두고 있지만 ABCP를 매입하면 유동성자산으로 분류돼 구조화·파생 상품에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CP에 대한 만기 제한이 풀렸지만 투자기관들의 운용지침 개정이 늦어지면서 이를 이용한 것이다. CP의 만기와 기초자산별로 투자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ABCP 기초자산, 파생결합증권·해외채권·구조화상품 속속 편입

올 들어 ABCP 시장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구조화채권이나 파생결합증권(DLS)에서 봤던 상품들이 ABCP의 기초자산으로 편입됐다. ABCP를 사면 구조화채권이나 DLS에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1월29일 NH투자증권이 발행한 ABCP는 은행채와 파워스프레드 스왑(Power Spread Swap)을 기초자산으로 편입해 기초자산의 전체 이자 발행 구조를 파워스프레드 구조화채권과 비슷하게 맞췄다. 파워스프레드 구조화채권을 ABCP로 유동화한 것과 같았다.


이후 미래에셋증권도 파워스프레드 스왑을 기초자산으로 ABCP를 발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ABCP는 3개월 만기로 차환되는 형태였다.

그러나 2월 말에 나온 신용파생상품 연계 ABCP는 사실상 증권사의 파생결합증권(DLS)와 다를 게 없었다. 2월26일 NH투자증권은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의 신용위험과 신한카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ABCP를 발행했다. 채권과 신용부도스왑(CDS)를 결합한 CLN(Credit Linked Note)이었다. 만기는 2년으로 NH증권이 발행했다면 CLN형 DLS가 될 뻔했다.

ABCP는 싼값으로 유통되고 있는 한국물 해외채권 투자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2월18일 로쉬제이차유동화전문회사는 제1회차 ABCP(실질차주 NH투자증권) 140억원 어치를 발행했다. 현대캐피탈이 발행한 외화표시채권 중 1000만달러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다. ABCP의 만기와 해외채권의 만기를 일치시켜 투자가는 해외채권에 투자하면서 환헤지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했다.

◇ DLS는 안 되지만 ABCP는 투자해도 되고?

자산운용사, 보험사, 서민금융기관 등에서 DLS에 대한 투자가 약관이나 내부 운용지침에 따라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ABCP는 가능하다. ABCP에 대해 CP에 준하는 투자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어 기초자산과 만기에 제약을 받지 않고 않는다.

구조화·파생 상품과 연계된 ABCP는 이 틈을 노렸다.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져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회사에 CLN 등 구조화·파생 상품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세금혜택이 부여되면서 예금이 크게 늘고 있는 서민금융기관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CLN 등에 대한 투자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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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기관의 투자 운용지침이나 펀드 운용 약관에 따라 운용기준은 상이하며 이 그림은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이다.

해법으로 나온 게 CLN의 구조를 가져가되 ABCP로 유동화시키는 방법이다. 증권사는 CLN형 DLS에 투자하면 발행사와 기초자산의 신용위험에 동시에 노출되지만 ABCP는 기초자산의 신용위험만 노출된다는 점도 강조하며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DLS는 펀드 약관상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아 ABCP로 한 단계 더 포장해 투자하게 된다"며 "ABCP는 만기에 관계없이 현금성 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ABCP 투자가 더 편리하다"고 말했다

◇ CP투자 만기 및 ABCP 기초자산별 규제 필요

CP에 대한 만기 규제가 풀린 상황에서 장기 ABCP 등을 통해 구조화·파생상품에 대한 우회 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하면서 비교적 금리가 높다고 인식되는 CLN이나 일부 구조화채권 등은 투자 수요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BCP의 경우 현금성 자산으로 취급되면서 기초자산의 위험이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의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큰 건설사 PF-ABCP가 대표적인 사례다.

증권사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CP 만기제한이 풀린 이후 거의 모든 금융상품이 ABCP로 둔갑할 수 있다 "고 우려했다. 이어 "투자 기관에서 만기별 CP 투자 범위를 규정하고 ABCP에 대해서는 기초자산별로 CP투자 대상을 가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며 "자칫하면 ABCP를 통한 파생상품 투자가 감독당국의 사각지대에서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CP 발행은 유가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시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는데 만기가 1년 이상이라면 사실상 회사채와 다를 바 없다"며 "투자자보호를 위해 공시의무 부과 등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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