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과 외환시장의 '샅바싸움'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2.25 11:45
글자크기

중의법 쓴 구두개입 "1기경제팀보다 노련" 평가

-외환당국과 외환 투자자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
-윤 장관의 발언으로 시장 경계심 높아져
-초반 기 싸움에 이어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윤증현과 외환시장의 '샅바싸움'


"만만치 않다", "속내를 잘 모르겠다", "말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무시할 수 없는 포스(힘)가 느껴진다"….



외환 딜러와 전문가들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고 평한 말들이다. 시장에서는 윤 장관의 등장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위기다.

윤증현 장관의 2기 경제팀과 외환 투자자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수직상승하며 환란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그 양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외환당국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본격적인 시장 개입에 나설 지에 시장 관심이 쏠려 있다. 그 중심에는 윤증현 장관이 서 있다.

◇"윤 장관의 진짜 의도가 뭔가"= 2기 경제팀은 출범 이후 줄곧 환율에 대한 말을 극도로 아껴왔다. 강만수 전 재정부 장관의 1기 경제팀이 지난해 내내 구두개입과 시장개입을 반복한 것과 대조적이다.

윤 장관의 환율 관련 발언은 여러 해석을 낳는 '중의법'을 담고 있다는 게 시장 반응이다. 동일 발언을 놓고 상반된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어눌한 말투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발언을 통해 시장에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 장관은 취임 후 환율 문제에 대해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게 낫다"며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보였다.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하지만 환율이 이달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자 "쏠림이 심하거나 투기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본격적인 개입이 임박했다"는 해석이 나왔고, 전고점을 돌파해 1500원대로 올라섰을 때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윤 장관은 그러나 25일 "환율문제를 잘 활용하면 수출확대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다소 상반된 메시지를 보냈다. 말 자체로는 강만수 전 장관이 지난해 상반기에 취했던 "수출확대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환율상승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과 비슷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발언의 진짜 의도를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제한적이지만 외환당국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넘어선 시장 개입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 전격 개입에 앞서 상대방을 느슨하게 만드려는 고도의 심리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 장관이 '타이밍'을 뺏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빼앗긴 주도권을 부분적으로 되찾는 과정에서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1기 경제팀은 너무 잦은 구두개입과 시장개입을 통해 '양치기소년'으로 취급받았고, 오히려 달러 매수 기회를 제공했다"며 "2기 경제팀은 시장과의 심리 싸움에서 상대적으로 노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싸움은 이제부터= 지금까지 1기 경제팀과 외환시장 투자자들은 '사전 탐색전'을 거친 단계다.



외환당국은 1500원 돌파까지 허용했지만, 각종 시나리오별 복합전략을 수립하고 본격 개입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라는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한국은행 측의 발언은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외환시장에서는 "한국 외환당국이 본격적인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어왔다. 지난해 1기 경제팀이 실탄(외환보유액)만 잔뜩 소모한 채 환율 방어에 실패한 만큼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개입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어 윤 장관의 발언을 흘려버리기 힘든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1500원이 뚫릴 때까지 거의 반응(개입)이 없었으니 일단 개입하기 시작하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 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지금까지 외환당국과 시장은 초기 신경전을 펼쳐왔다면 본 게임은 이제부터"라며 "시장에서는 윤 장관의 발언과 그에 따른 외환당국의 변화에 촉각을 곧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