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내 의료비가 사라졌다

머니투데이 송선옥 기자 2009.02.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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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과소신고로 간소화서비스에 신용카드·의료비 내역 달라

-국세청, '의료비 신고센터' 운영
-증빙서류 제출, 강제 아닌 협조사항
-개인정보 유출 우려땐 삭제신청 가능

직장인 오씨는 지난달 연말정산을 위해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장모님 임플란트와 아들 치아 교정 치료비가 900만원이나 적게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비를 결제한 신용카드 사용내역에는 의료비 총 결제내역이 1200만원으로 정확하게 기재돼 있었지만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에는 300만원만 찍혀 있었다.



오씨는 해당 치과에 항의해 직접 1200만원짜리 의료비 영수증을 발급 받아야 했다. 하지만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에 신용카드에도 정확히 기재된 의료비 결제내역이 축소돼 올라왔다는 사실은 영 찜찜했다.

◇의료비 지출이 줄어든 이유=실제 의료비 지출 내역과 간소화서비스에 올라온 의료비가 다른 이유는 왜일까.



첫째는 법적 규제의 미비 탓이다. 소득세법 165조 등에 따르면 소득공제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발급하는 자는 국세청장에게 소득공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강제사항이 아닌 협조사항일 뿐이다.

국세청은 이같은 협조사항, 즉 행정지도에 따라 소득공제 증빙서류를 금융회사, 병의원 등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제출받고 있다. 병원이 의료비 내역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도 국세청에선 가산세를 부과하는 등으로 규제하기가 불가능하다.

둘째는 시스템 구축의 어려움이다. 현재 휴대폰 사용료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외 항목으로 법적근거가 마련돼 있어 신용카드 사용내역에서 제외돼 국세청에 신고된다.


하지만 의료비는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해도 신용카드사가 따로 분리해 국세청에 신고할 법적 근거가 없다. 게다가 통신사는 3개에 불과한 반면 병의원은 전국적으로 일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아 신용카드사가 따로 집계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결국 국세청의 간소화서비스에 올라오는 의료비 내역은 병의원이 임의로 축소해 올릴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간소화서비스만 믿고 있다간 연말정산에서 마땅히 돌려 받아야 할 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의료계 “서류 제출 싫어”= 의료비를 둘러싼 의료계의 반발은 지난 2006년 간소화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06년 이전에는 의료비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직접 일일이 병의원을 돌아다니며 영수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간소화서비스가 도입된 이후부터는 병의원이 환자들의 의료비 내역을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고 일부 의사들은 관련 소득세법을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전원일치로 이같은 일부 의사들의 청구를 기각해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국세청은 간소화서비스에 올라오는 의료비와 관련, 근로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번 연말정산부터 간소화서비스 홈페이지에 `의료비 신고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의료비와 관련해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얘기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의료비 신고센터’에 의료비 액수를 적게 신고한 것으로 접수된 병의원들을 본보기로 세무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은 의료비 신고센터에 접수된 병의원들은 직접 방문해 신고내용을 확인,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비 액수를 과소신고한 병의원을 강제로 규제할 수 있는 규정은 없지만 엄중한 점검은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간소화서비스, 어디까지=국세청은 의료계의 `개인정보 유출’ 주장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연말정산부터 `소득공제자료 삭제신청’이 가능하도록 간소화서비스를 개선했다.

근로자 개인이 간소화서비스에 들어가 공제항목별, 발급기관별, 개별건별로 영수증 자료를 삭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느 병원에서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면 관련 내용을 삭제해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삭제신청이 가능하지 않았을 때 한 미혼 여성은 산부인과 치료내용을 삭제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국세청은 이번에 처음 실시하는 `의료비 신고센터’에 몇 건의 사례가 접수됐는지 밝히기는 거부했다. 신고기한이 오는 3월10일까지 남아있는 데다 사례를 공개해 발생할 수 있는 의료계와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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