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한남 더 힐', 16년 한풀이 역사

장시복 기자 2009.02.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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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한남 더 힐', 16년 한풀이 역사


'보증금 25억, 강북 최고의 입지, 연예인·재계고위층의 대거 청약, 최고 51대1의 청약률...'

보증금 25억원의 초고가 임대단지 '한남 더 힐'이 화제다. 최고 51대1 등 일거에 마감된 청약결과는 시공사인 금호건설조차도 예상 밖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박을 터뜨리기까지 '더 힐'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 했다. 시행·시공사들의 잦은 부도와 IMF 외환위기여파로 16년 동안이나 사업이 표류했던 것. 그래서 혹자는 이번 청약 결과를 '고진감래'라고 평한다.

◇'얽키고 설킨' 단국대 부지의 16년 악몽



재정난을 겪던 단국대 재단은 1993년 한남동 캠퍼스에 아파트를 지어 부채를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또 부채를 갚고 남은 돈으로 용인에 새 캠퍼스를 짓겠다는 구상도 마련했다.

이듬해인 1994년 시행사인 세경진흥이 주도해 조합아파트 건립사업 방식으로 사업을 처음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때 풍치지구 해제 특혜 논란이 일면서 도리어 이 일대가 모두 고도제한구역으로 묶였다. 이 바람에 사업이 무산되면서, 각종 소송 사태로 번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이러던 중 IMF 외환위기가 몰아닥쳤다. 1998년 세경진흥과 공동시공사인 기산건설·극동건설, 신탁회사인 한국부동산신탁이 모두 부도가 나버려 채권·채무 관계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버렸다. 이 때 이들 채권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캠코)에 각각 넘어갔다.

2003년 우리은행이 프로젝트 파이낸싱 주간사를 맡아 3000억원을 지원키로 하고 시행사인 단국대, 스타포드 등과 사업약정서를 체결했지만 복잡한 채무 관계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2005년 5월에도 시행사인 공간토건과 시공사 포스코건설이 사업 약정서를 체결했지만, 포스코건설은 몇달 뒤 사업성이 없다고 보고 포기했다.

◇금호건설의 적극적인 사업으로 전환기 맞아


단국대 터 개발 사업이 전환기를 맞은 것은 2005년 하반기 금호건설이 사업권을 따내면서부터다. 금호건설은 2005년 단국대 용인캠퍼스 신축 공사를 1225억원에 수주한데 이어, 곧바로 단국대 서울캠퍼스 자리에 600가구 규모의 고급 빌라단지를 조성하는 사업권을 인수했다. 용인캠퍼스 공사를 수주한 것은 한남동 개발을 위한 포석 작업이었다.

금호건설은 부동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에 사업 타당성 분석을 맡기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주변의 우려를 잠재웠다. 그런데 잘 진행된다 싶었던 사업은 또다시 '분양가상한제'라는 암초를 만났다. 금호건설과 시행사인 한스자람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시행일 전인 2007년 8월말 분양승인 신청을 했지만, 용산구청이 신청서를 반려하면서 또 다시 좌초 위기를 맞았다.

상한제가 적용될 경우 애초 분양예상가(3.3㎡당 3000만원)보다 1000만원 낮은 2000만원선에 분양할 수 밖에 없어 사업성이 없다. 결국 임대 모집형식으로 분양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예보와 1280억원대 채권 소송이 마지막 걸림돌로 작용했다. 단국대 부지에 묶여있던 채권 예고 등기가 풀려야 임대모집승인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입주자 모집에 나서려던 계획도 무기한 연기됐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법원의 중재로 단국대(한스자람)와 예보가 극적인 합의를 이루면서 입주자 모집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청약결과는 '대박'이었다. 고가 임대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51대1, 평균 4.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16년간의 숙원이 한꺼번에 풀린 순간이다. 서울 최고의 노른자위 요지에 지어지는 저층의 고급 아파트라는 점이 고소득자에게 인기를 끈 것이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그동안에 누적돼 온 복잡한 권리관계와 조합문제를 해결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며 "다른 건설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에게 노하우를 물으러 올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복잡했던 사업을 추진했던 만큼 부동산 침체기에 성공적인 청약 결과가 나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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