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칼럼]일본 제조업 경쟁력 비밀 '시아게'

머니투데이 홍찬선 MTN 경제증권부장(부국장) 2009.02.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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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발 2차 위기..잇단 정책 발표보다 실제로 챙겨라

[홍찬선칼럼]일본 제조업 경쟁력 비밀 '시아게'


어렸을 때 엄마보다 아버지의 인기가 더 많았던 같다. 기분파였던 아버지는 외출할 때 눈깔사탕이나 라면땅 같은 것을 사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것을 사주기는커녕 사주려는 아버지마저 말렸다. 아버지는 어린 것이 안스러워 지갑을 열었겠지만, 살림살이 책임으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엄마는 내일을 위해 눈을 질끈 감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속 깊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어릴 적 마음엔 적잖은 상처가 생겼다.

짚신을 만들어 파는 아들이 운명하는 아버지에게 짚신 잘 팔리는 비법을 묻자 “털…”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이 튼튼하게 만든 짚신보다 아버지가 설렁설렁 만든 짚신이 더 잘 팔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에게 아버지가 알려준 것은 바로 마무리의 중요성이다. 발바닥을 찌르는 볏짚 조각을 부드럽게 없애주는 끝맺음이 짚신의 상품성을 결정한 것이다.



시아게는 마지막 다듬질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제조업으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의 비법은 바로 시아게였다. 시아게, 즉 마무리의 생명은 쫀쫀함과 챙기기이다. 곰처럼 우직하게 ‘식스 시그마(6σ, 100만개 중 불량품이 6개)’를 실천하고, 한번 내놓은 정책이나 약속은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뜻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시아게는 인기가 없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인데, 누구나 앞에 나서 폼 나고 인기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 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치다꺼리 하는 것을 즐겨하겠는가.



며칠 뒤면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정부는 어느 쪽일까. 지금 힘들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사랑스런 아이에게 회초리를 드는 어머니일까, 아니면 당장의 안쓰러움으로 사탕을 물리는 아버지일까. 끝맺음을 잘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아버지 쪽일까, 아니면 힘만 믿고 거칠게 끝내는 아들에 가까울까.

동유럽 발 2차 위기의 쓰나미에 직면해 있는 이명박 실용정부는 쫀쫀함과 챙기기보다 폼과 인기의 함정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미국 발 1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임한지 1년도 안돼 경제팀을 바꾸었는데, 윤증현 경제팀은 출범 초기부터 중첩되고 있는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시험을 치르게 됐다.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원화가치 하락)하고 있다. 새해 들어 잠잠해지던 3월 위기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3월 위기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9월 위기는 말도 안된다”고 큰 소리쳤던 작년 9월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여전히 반신반의다.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애널리스트의 입을 단속함으로써 ‘좋지 않은 리포트’는 줄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쫓기던 꿩이 머리만 숨긴다고 사냥꾼을 따돌린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윤증현 장관은 취임 전에 (정부가 신뢰를 잃은 것은) “실용정부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제한된 자원을 꼭 해결해야 할 부분에 집중 투입해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정책만 자주 발표하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돈이 돌아야 하고, 돈이 돌려면 은행은 대출하고 기업은 투자하며 국민은 소비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주체가 정부정책을 믿어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겠다면서 만기를 100% 연장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웃금리를 요구해 옥석을 가렸다면 살았을 기업마저 문을 닫는 상황에서 신뢰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인기와 돈, 그리고 여자(남자)는 쫓는다고 얻는 게 아니라 쫓아올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가질 수 있다. 정치가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만 정치꾼은 눈앞의 인기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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