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지폐 만든 경찰, 처벌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2.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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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위조죄 해당되지만 위법성 없어 처벌 안 받아

-경찰 제작 7000만원 위폐 유출… 700만원 유통
-경찰 "한은 승인 받았다" vs 한은 "금시초문"
-무척 정교한 위폐 vs 가방으로 범인 잡는다(?)

정교한 위조지폐를 만든 경찰은 죄가 없을까. 예상 답안은 "통화위조죄에 해당되지만, 긴급피난 등 요건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경찰이 만든 '수사용 위조지폐' 때문에 한국은행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05년부터 같은 일련번호 'EC1195348C'를 사용하는 1만원권 위폐를 대량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 11일 제과점 여주인 납치범 정모(32)씨가 위폐 7000만원 어치를 갖고 달아났다.

이 위폐는 언뜻 육안으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정모씨는 이 위폐 700만원을 건네주고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문제가 불거지자 미리 한은에 자문을 구했고 '유통에 사용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괜찮다'는 답신을 받았다고 에둘렀다. 하지만 한은은 "전혀 모르는 일로, 경찰이 혼자 만든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한은법상 위폐제조는 원천봉쇄돼 있다. 모조품조차도 교육 연구 보도 재판 등 특수한 목적으로만 제작·사용할 수 있다. 그나마 크기는 200% 이상이거나 50% 이하로 해야 하고, 도안에 '한국은행'이란 명칭을 명기할 수 없다. 다른 식으로 화폐 도안을 이용하려면 한은에 서면으로 사전 사용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없이 모조품을 제작·사용하면 경고 및 시정조치를 할 수 있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저작권법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묻게 돼 있다.

따라서 이번에 문제된 위폐는 모조품이 아닌 위폐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 크기 규정은 물론 '한국은행'이란 명칭까지 고스란히 빼닮았기 때문. 게다가 사전 사용승인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경찰을 처벌할 수 있을까. 한은이 고문 변호사 등을 통해 자문을 구한 결과 이번 경찰의 위폐제조는 '형법상 통화위조죄'에 해당된다. 이른바 범죄행위 구성요건에 들어맞는다는 얘기로, 일단 처벌사유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당행위, 긴급피난' 등으로 해석가능해 '위법성 조각사유(위법성을 배제하는 사유)'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경찰은 이번 위폐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인질을 구출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

형법상 범죄로 최종 판정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가 △위법성 조각사유인가(위법성을 배제하는가) △책임조각사유인가(책임이 배제되는 경우인가) 등 3가지 범죄성립요건을 고려한다.

예를 들어 사고로 의식을 잃은 사람의 생명이 위급했을 때 본인이나 가족의 허락없이 긴급 수술한 것은 일단 상해죄에 해당되지만 위법성 조각사유(긴급피난)에 따라 위법성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해 처벌할 수 없다.

이번 경찰의 위폐제조 및 불가피한 유통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인질을 구하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긴급피난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위폐는 앞면(세종대왕 도안)을 봤을 때 왼쪽 자투리 공간에 숨은 그림(은화)가 없다. 또 오른쪽에 세로로 찍힌 점 세 개 안에 숨겨진 점자도 없다. 홀로그램의 경우 밝은 은색이 아니라 회색에 가깝다. 눈앞에 놓고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위폐임을 알 수 없다. 경찰의 '정교한 수사 의지'를 담은 셈이다. 다만 위폐를 담는 가방에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범인을 잡겠다는 '순진한 발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가방을 잡힐 때까지 들고다닐 범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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