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미운 상사에 "얼른 임원 되세요"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09.02.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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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졸초임 4316만원'(하)


- 잘못된 임금체계, 임원되면 부장보다 낮은 보수
-'상박하후' 오래된 관행, 개선작업 노조서 반발


한해 수조원대 순익을 올리며 직원에게 후한 인심을 베풀었던 은행권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돈잔치'를 계속하기 어렵게 됐다.

은행권, 미운 상사에 "얼른 임원 되세요"


당장 지난해 순익이 반토막났다. 일부 은행은 지난해 분기로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올해 적자전환을 우려하는 곳이 상당수다. 그렇지만 이번 위기로 왜곡된 임금체계가 뜯어고쳐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연봉 역전 왜?=은행권 임금은 대개 위로 더디고, 아래는 넉넉하게 늘어나는 '상박하후'형 체계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최근 임원급이 경제위기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상여금 일부를 자진 반납하기로 하면서 일반 직원의 보수가 임원 수준을 웃도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책은행인 A은행의 부행장 연봉은 1억600만원(성과급 제외)이다. 성과급이 별도로 지급되는 체계지만 성과급은 최근 어려운 경영여건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부장급 보수는 한해 1억5000만원가량이며, 별도의 부서 업무지원비도 지급된다. B은행 집행간부(부행장) 연봉은 1억700만원이다. 부장·지점장급이 한해 9000만~1억2000만원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오히려 보수가 깎인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평소 모시기 힘든 상사에 대해 "얼른 부행장으로 승진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이 오간다고 한다. 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부장 때보다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적어 집에서 의심을 받기도 했다"며 "명예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발하는 노조=은행 보수체계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됐다는 목소리는 은행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올해 기업구조조정 등에 따른 대손충당금 부담이 그 어느 해보다 커서 적자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올해 생존을 위해서는 비용요인을 최대한 억제하는 등 긴축경영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은행권은 일반 기업이 속속 채택하는 연봉제 대신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다. 호봉제는 경영여건이나 실적의 변화에 관계 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꾸준히 올라간다. 은행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대졸초임이 높은 상태에서 호봉제는 고임금구조를 유지하는 축이 된다. 신입행원 초임을 낮추는 데 대해 은행권이 반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신입행원 초임을 삭감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은행 전체의 임금테이블을 손보겠다는 의미"라며 "어느 직원이 이에 찬성하겠냐"고 반문했다.

노조의 반발도 거셀 조짐이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말 단체협상에서 임금 소급 동결 등 경영진에게 1차례 양보한터라 더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병민 금융노조 위원장은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은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임금을 삭감할 경우 단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의 실질소득이 줄어 내수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임금삭감은 추진단계부터 노사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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