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고용시장…FX 대박의 '꿈'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09.02.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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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 50배, 쪽박 위험에도 FX마진거래 급증

# 지방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K씨(28세)는 취업을 포기했다.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파는 대신 한국의 '조지 소로스'라는 원대한 꿈을 꾸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 외환전문가도 손해볼 수 있는 외환과 파생상품시장의 위험성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내몬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다.




취업이 되지 않은 많은 친구들이 오늘도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K씨는 가까운 서점에서 'FX마진거래'라는 투자기법에 대한 책을 구입한 뒤 오늘도 '열공'하고 있다. 단돈 만원짜리 이 책은 200만원만 있으면 최고 1억원을 벌 수 있는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의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FX마진거래는 두 나라의 통화를 동시에 사고파는 방식의 외환거래다. 달러 파운드 유로 엔 등 8개국의 통화 중 2개를 교환해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을 노리는 투자방식이다. 한국에서도 수년전부터 본격화된 이 시장은 규모만 놓고 보면 지구촌 최대의 재테크 시장이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조달러, 뉴욕증권시장 하루 거래금액의 수십 배가 넘는다.



그 유명한 '조지 소로스'의 투자신화도 바로 FX마진거래에서 비롯됐다. 1992년 9월6일 조지 소로스는 영국 파운드화를 상대로 FX마진거래를 통해 하루에 약 1억 달러를 챙겼다.

비결은 바로 주식·선물·옵션 뺨치는 50배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벌려면 주식으로는 자산가격이 100%가 올라야하고, 선물은 15%가 올라야하지만, FX마진거래에서는 2%만 오르면 100원을 벌 수 있다. 도박으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대박'게임이다. 카지노에서 성행하는 '블랙잭'게임의 경우 가장 좋은 패를 받으면 1.5배의 수익을 얻지만, FX마진거래는 50배까지 먹을 수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점도 K씨의 구미를 당긴다. 선물옵션계좌의 경우 1500만원의 최소 증거금이 필요하지만 FX마진거래는 단돈 200만원의 증거금만 있으면 50배의 대박을 노릴 수 있다.


FX마진거래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개인 투자가 허용되고, 인터넷으로 24시간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와타나베 부인'(일본인에서 흔한 성(姓)으로 보편적인 주부)들로 불리는 이웃나라 일본의 주부들은 도쿄 외환 시장 거래량의 30%를 차지하는 '큰 손'으로 등장하면서 전세계 환 시장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오래다.



'도박 좋아하기로는 빠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 한국 사람들. 금리는 점점 떨어지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활황에도 제동이 걸리자 FX마진거래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물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일평균 2364만달러에 머물렀던 국내 FX마진거래의 거래대금은 2006년 3486만 달러, 2007년 3억1883만달러, 2008년 20억434만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08년 한해 동안 2007년에 비해 일평균 거래량과 거래대금은 2007년에 비해 각각 529.8%, 528.6%급증했다.

현재까지 FX마진거래를 제공하는 곳은 외환, KR, 한맥, 유진, 우리, 현대 등 6개 선물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이 이처럼 커지고,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시장에 열리자 대다수 증권사들이 선물팀을 만들어 'FX마진거래'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사들은 호가를 제시할 능력이 없다. 모두 외국의 FCM(Futures Commision Merchant)와 같은 회사에서 호가를 받아서 마진을 얹어 수익을 낸다. ELW와 같은 '고위험·고수익'상품에 한국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본 외국계 FX중개사들에게 한국은 매력 넘치는 시장이다.

그러나 FX마진거래의 그림자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소액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50배의 수익을 꿈꾸지만 50배의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큰 도박판에 작은 판돈으로 들어가면 잃는 경우가 십상인 것과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는 FX마진거래에 뛰어든 한 젊은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본 뒤 자살했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쪽박의 위험'도 K씨의 '대박의 꿈'을 막지는 못한다.

"어짜피 취업시장의 문은 높고, 고용도 보장되기 어렵습니다. 저 같은 젊은이들이 적금, 주식, 부동산 중 뭘로 돈을 벌겠습니까"

오늘도 환율에 관한 '열공'을 마친 K씨의 발길은 저녁에 있을 FX마진투자의 스터디 모임으로 향한다. 얼마 전 손해를 많이 봤던 실패한 투자 선배의 조언도 들을 예정이다.



K씨의 꿈은 원대하지만 그의 목표는 허물어질 수도 있다. 외환전문가들조차 "환율시장은 상하 제한이 없고 레버리지가 큰 만큼 리스크 관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변동성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젊은이들조차 위험성이 큰 시장으로 내몬 것은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또다른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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