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우리은행의 눈물젖은 도시락

반준환 기자 2009.02.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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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놓인 도시락을 보니 학창시절 끼니를 굶던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얼마 전 점심식사 때 은행장 면전에서 눈물을 흘린 우리은행 한 임원의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4차례 토요일을 이용해 은행장 및 부행장, 본부장 등 임원 65명이 참석하는 사내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임원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모처럼의 휴일까지 출근해야하니 입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요. 연수 프로그램도 귀에 가시를 박는 것처럼 불편한 내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세계 경제전망이 불확실하고, 마이너스 성장이 시작됐고…."

기업 구조조정에 가계대출 연체까지,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문제로 시달렸던 임원들에게는 고문이었을 겁니다. 한 강사는 "우리은행처럼 영업해서야 되겠냐. 정말 반성할 문제다"라며 대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17일 연수 후 마련된 점심식사였습니다. 연수 후 사내식당에 모인 임원들 앞에 준비된 건 80년대 말 사라진 양철 도시락이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밥 위에 계란 프라이 한 장과 밀가루 소시지가 얹어 있었다지요.

60~70년대 경제상황에선 계란과 소시지 반찬, 사이다는 소풍 같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연다지만, 그 시절엔 물 한잔으로 점심끼니를 때우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눈물을 흘렸던 임원은 산골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통학하며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나 은행에 입사해서도 인력감축에 구조조정 등 어려운 과정이 많았다네요.

어쨌거나 그 임원으로선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건 민망한 일이지만, 자리에 동석했던 임원들은 면박 대신 숙연한 분위기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그의 눈물을 반성의 계기로 삼았다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한 임원은 "도시락의 추억을 떠올리며 과연 현재가 예전만큼 어려운가, 그리고 그 때처럼 노력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활수준이 올라가며 고통을 감내하는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닌가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눈물은 맛이 다르다지요. 슬프거나 분노했을 때는 교감신경 흥분 탓에 수분이 적고 염화나트륨이 짙은 '쓰고 짠' 눈물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은 이보다 묽고 감정에 따라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네요. 경제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흘려야 할 눈물은 더 쓸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머지않아 모두의 가슴에 지금과 다른 눈물이 촉촉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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